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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재약산 생태탐방로

폭포의 비경과 억새 물결에 취하다

(밀양=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산행에 가장 좋은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맑고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걷는 기분이 무척 좋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산과 은빛 물결 출렁거리는 억새군락지는 가을에만 만끽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지난 10월 중순 영남알프스의 준봉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재약산. 맑은 물 쏟아내는 계곡 길 끝에는 푸른 하늘 아래 억새가 덩실덩실 춤추는 은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은빛 억새 바다 펼쳐진 재약산 사자평 [사진/전수영 기자]
은빛 억새 바다 펼쳐진 재약산 사자평 [사진/전수영 기자]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 등 영남 5개 시·군을 잇는 영남알프스는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해발 1천m 이상의 산군(山群) 7개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울산과 밀양의 경계에 있는 재약산은 해발 1천119m로 가지산(1,241m), 천황산(1,189m), 신불산(1,159m)에 이어 네 번째이지만 산세와 풍광으로는 단연 으뜸이다. 특히 동남쪽 사면의 해발 720~760m 고원에 있는 사자평은 고산습지로 이탄층이 발달하고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주봉인 사자봉(1,189m)과 수미봉(1,090m), 향로봉(1,091m)이 하늘을 떠받치고 발치에는 호국 사찰인 표충사를 품고 있다.

재약산은 예로부터 약초로 유명하다. 재약(載藥)도 약이 실린 산이라는 뜻이다. 신라 흥덕왕의 왕자가 나병에 걸렸는데 이곳 표충사(창건 당시 죽림사)에서 약수를 마신 후 환부를 씻고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흥덕왕은 절 이름을 병을 낫게 한 영험한 우물이 있다는 뜻에서 영정사(靈井寺)로 고쳐 부르게 하고, 사찰을 품은 산은 좋은 약초가 많이 나는 산이라는 뜻에서 재약산으로 부르게 했다고 한다.

재약산 등산로는 울산에 2개, 밀양에 4개 코스가 있다. 이 중 가장 사랑받는 코스는 표충사에서 동편 옥류동천을 따라간 후 사자평을 거쳐 사자봉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이날 산행은 표충사에서 사자평까지만 목표로 삼았다. 국가생태탐방로로 조성된 1구간의 공사가 최근 완료됐기 때문이다. 현재 표충사에서 옛 고사리분교까지 3.2㎞ 구간의 공사가 끝났고, 내년 말까지 사자평까지 1.1㎞ 구간에 대한 일부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 영정약수로 목축이고 산행 시작

탐방로의 출발점인 표충사
탐방로의 출발점인 표충사

재약산 생태탐방로의 출발점인 표충사.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처럼 재약산의 봉우리들이 사찰을 포근하게 감싼 형국이다. 표충사는 원효대사가 654년 창건한 절로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였다. 지금도 사찰 뒤편 언덕으로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표충사란 이름은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를 기리기 위한 표충서원을 1839년 이곳으로 옮기고 중창하면서 이름을 표충사로 바꿨다. 표충사는 사찰과 유교 서원이 함께 있는 독특한 절이다. 한쪽에는 신라 흥덕왕의 아들이 사용하고 병을 고쳤다는 약수가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터가 있다. 이름은 '영정약수'(靈井藥水). 바가지 한가득 담아 들이켠 약수는 무척 달고 시원했다.

표충사 오른편의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나무 그늘 시원스러운 임도를 따라 걷자 이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투명한 계수가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은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자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그맣던 계곡의 바위들은 이제 집채만 하다. 경사가 가팔라지고 바위가 커진 만큼 물 흐르는 소리도 커졌다.

기암 아래 설치된 데크 계단
기암 아래 설치된 데크 계단

그늘진 숲길을 따라가다 가파른 데크 계단 길에 들어서자 마침내 탁 트인 하늘 아래 재약산이 속살을 드러냈다. 데크 계단 중간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자 맞은편으로 웅장한 기암들이 장식한 두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따라 길고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는 흑룡폭포가 나타났다. 시커먼 바위를 타고 흐르는 하얀 물줄기를 보니 백룡폭포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전망대를 벗어나 다시 계단을 오른다. 오른편으로 기암과 푸른 소나무가 뒤엉킨 풍광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습을 바꾸며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약간 흙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울긋불긋 단풍이 고운 데크 계단길이 이어진다. 데크 계단길 끝에 서자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눈 앞에 펼쳐진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광경이다.

◇ 층층폭포 지나면 펼쳐지는 억새군락지

탐방로에서 바라 본 흑룡폭포
탐방로에서 바라 본 흑룡폭포

길은 숲길과 데크 계단길이 반복된다. 구룡폭포를 감상한 후 커다란 기암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린 구간을 지나자 물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데크 다리 끝 전망대에 서자 숨겨졌던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명 '층층폭포'. 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위에서 한 번, 아래에서 또 한 번 떨어져 내려서 붙은 이름이다. 아래쪽 폭포 앞으로는 무지개가 떠올랐다. 맑은 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한다. 폭포와 무지개와 단풍이 어우러진 맑은 풍경은 무척이나 곱고 아름답다. 이곳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은 필수일 것 같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보는 폭포와 무지개와 데크 길의 모습도 꽤 그럴싸하다. 데크 계단 길 끝에 서자 일명 '작전도로'라 불리는 산간 도로다. 한국전쟁 때 무장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만든 군사 작전용 도로는 지금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정표에는 '재약산 1.85㎞'라고 적혀 있다.

완만한 경사의 도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왼편으로 '고사리분교터 0.12㎞'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자 평탄한 공간이 나타났다. 1966년 개교해 졸업생 36명을 배출하고 1996년 폐교된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가 있던 공간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여서인지 옛 건물의 흔적 하나 남지 않은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고사리분교터에서 조금 발걸음을 옮기면 사자평 습지보호지역을 만난다. 넓이 4.1㎢로 우리나라 고산습지 중 가장 넓은 곳이다. 눈앞에는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다. 가을의 눈 부신 햇살 아래로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은빛으로, 금빛으로 물결친다. 억새의 물결에 한참 취해 있다 보니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듯하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돌아가거나 작전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표충사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밀양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각종 나물, 더덕구이, 흑염소불고기 등으로 산행으로 출출해진 배를 채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지개 피어난 층층폭포
무지개 피어난 층층폭포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1/13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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