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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산청 동의보감촌

한의학의 '과거·현재·미래' 체험 공간
엑스포주제관은 다양한 약초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엑스포주제관은 다양한 약초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산청=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경남 산청의 동의보감촌은 한방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다. 한의학박물관을 중심으로 전시관과 체험시설, 야외 공원과 산책길, 숙박 시설, 음식점과 상가가 모두 모여 있다. 비록 허준 선생은 없어도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한 한의학(韓醫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 허준 스승으로 알려진 '류의태'는

산청은 한방과 약초를 중심으로 한 산업·관광의 중심지를 자처하고 있다. 2013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렸고, 올해로 18년째 한방약초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산청이 한방과 약초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산은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1천여 종의 약초다.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산청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최고의 한방 의서 동의보감이나 동의보감을 편찬한 조선 명의 허준(1539∼1615)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허준은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묻혔다.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내어준 것으로 알려진 스승 '류 의태'는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1990년 처음 출간된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과 이 소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산청군이 이를 관광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물론 산청이 명의를 배출한 곳은 맞는다. 숙종의 어의로, 홍역 전문 치료서인 '마진편'을 저술한 유이태(1652∼1715) 선생이 고향인 산청에서 활동했다. 소설 속 류의태란 이름은 실존 인물인 유이태 선생에게서 따 온 것으로 보이지만, 유이태는 허준보다 무려 100년 뒤의 인물이니 소설과 같은 사제지간이 성립할 수는 없다.

한의학박물관은 18세기 후반의 한의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한의학박물관은 18세기 후반의 한의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 중국에서도 출판된 동의보감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동의'는 땅이 넓어 남북으로 기후와 체질, 치료법을 구분했던 중국의 북의(北醫), 남의(南醫)와 엄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조선의 전통임을 강조하는 뜻이다.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의 '보감'은 "이 책을 한번 펼쳐보면 병의 길흉과 경중이 맑은 거울처럼 환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붙인 이름이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조선의 기존 의서와 민간요법을 망라해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선조의 왕명을 받아 궁중 내의였던 허준이 다른 여러 명과 편찬에 착수했으나 정유재란 이후에는 허준 혼자서 15년 만에 25권으로 완성했다. 목차만 2권에 내경편 4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등이다.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된 동의보감은 조선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여러 번 출판됐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우리나라 서적 중에서 중국에서 간행된 것이 극히 드물었는데 다만 '동의보감' 25권만이 성행하였다"고 적었다. 약재를 채취해 가공하고 약을 달이는 방법 등을 다룬 탕액편은 언해본(한글본)으로도 편찬됐다.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제철을 맞아 만발한 구절초
제철을 맞아 만발한 구절초

◇ 구절초부터 100년 된 다래나무까지

이곳을 찾은 10월 초, 동의보감촌 곳곳은 만발한 구절초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흔히 들국화라 부르는 구절초는 예쁘기도 하지만, 한약재로 쓰인다. 음력 9월 9일, 꽃과 줄기를 잘라 부인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약재로 썼다 하여 구절초(九折草)라 부른다고 한다.

입구인 '불로문'(不老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가장 큰 전시관인 엑스포주제관이다. 주제관 앞마당에는 화분에 심어 가꾼 약초들이, 1층 로비 안쪽 벽에는 곱게 눌러 말린 약초들이 장식하고 있다. 음나무처럼 눈에 익은 것도 있지만, 자주쓴풀처럼 처음 보는 것들이 훨씬 많고, 할미꽃이나 금낭화 등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약초로 쓰이는 줄 몰랐던 것들은 더 많다.

한의학박물관에서는 탕약기에 들어가기 전, 말려 잘라놓은 약초들뿐 아니라 전갈, 죽은 누에(백강잠)와 누에똥(잠사), 백화사(뱀), 말벌집(노봉방), 지렁이(지룡), 땅강아지(토구), 별갑(자라 등딱지) 등 동물성 약재와 유황, 천축황, 현정석 등 광물성 약재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온실로 된 산청약초관에서는 약재나 음식재료, 열매나 차로만 접했던 황칠나무, 헛개나무, 구기자나무, 맥문동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100년 된 돌배나무와 다래나무의 우아한 자태도 감상할 수 있다. 약초관 옆 약초테마공원은 제철인 국화들이 화려하게 피었다. 꽃과 아기자기한 조형물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에도, 지붕을 얹고 한방 향기 주머니를 매달아 놓은 나무 데크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며 내려다보기에도 좋다.

◇ 아이들도 어른들도 즐거운 놀이터

동의보감촌을 찾는 방문객은 아무래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만 아이들의 놀이터, 체험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편백 2천여 그루를 심어 미로를 만든 한방미로공원은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하기 좋다. 미로는 동의보감 본문 처음에 나오는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를 형상화했다. 신형장부도는 일반적인 신체해부도와 달리, 오장육부의 운행과 기의 흐름을 그린 개념도다. 엑스포주제관에서 한의학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슴목장 위로 나무 계단과 밧줄 등을 연결해 놓은 어린이 놀이시설인 '하늘 걷기 숲속 모험'과 오장육부를 알록달록한 조형물로 꾸며 놓은 한방테마공원도 눈길을 끈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곳은 '기 받는 바위'라는 석경과 귀감석, 복석정이 있는 한방기체험장이다. 앞으로는 경호강이 흐르고 뒤로는 가야 10대 임금이자 김유신의 증조부인 구형왕의 것으로 전해지는 돌무덤이 있는 왕산을 인 좋은 터라 한다. 사기 논란 끝에 폐기된 4대 국새를 만든 전각전도 이곳에 있다. 언뜻 궁궐이나 사찰의 대웅전처럼 보이는 동의전에서는 한방온열체험, 약초 향기 주머니 만들기, 한방티테라피, 기혈 순환체조 체험 행사 등이 열린다.

동의보감촌 안에 있는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지을 수 있지만, 구절초 군락지에 만든 산책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오장육부의 이름을 딴 길마다 효능 있는 식물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얼음동굴 속 해부장면을 재연해 놓은 해부동굴도 제법 그럴싸하다.

동의보감촌에서 내려다본 아랫마을의 아침 풍경
동의보감촌에서 내려다본 아랫마을의 아침 풍경

◇ 숲속 아침 산책으로 보신

숙박 시설은 한방치유형 숲과 자연 학습장을 갖춘 한방자연휴양림부터 글램핑·야영장, 가족호텔, 한옥 스테이, 콘도 등이 있어 선택지가 넓다. 한옥 스테이인 동의본가에서 묵으면, 이른 아침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야영장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 정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발아래 가득한 하얀 구절초를 지나 저 아래 마을에는 산안개가 낮게 깔렸다. 내려가는 길은 키 큰 소나무 숲길도 좋고, 구절초 군락지 사이로 난 허준 순례길도 좋다.

'무기력하세요? 귀를 30회 마찰해주세요!'라는 표지판을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양쪽 귓불을 쓱쓱 문지르고 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바위 꼭대기에서 볼을 씰룩거리며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까지 구경하고 내려오니 침, 뜸, 보약이 아니어도, 바위의 기운을 받지 않아도 충분한 아침 산책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1/10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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