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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2천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송고시간2018-10-08 10:30

검투사들의 대결이 펼쳐졌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연합DB

검투사들의 대결이 펼쳐졌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연합DB

세계적인 여행지로 절대 빠지지 않는 곳, 이탈리아 로마에 갔다. 시계를 2천여 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 곳곳에 자리 잡은 유적들이 로마의 영광과 몰락을 보여준다.

검투사들의 대결이 펼쳐졌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은 대표적인 유적지답게 입구에서부터 신화적인 인상이 강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서서히 드러나는 내부의 모습.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벤허’의 대전차 경기가 눈앞에 그려졌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상층부가 절반쯤 무너져 내렸지만 웅장함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트레비 분수에서는 물속에 동전을 두 개 던졌다.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개 던지면 사랑이 이뤄지며, 세 개 던지면 싫어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동전을 두 개 던졌는데 로마에 두 번 왔다고 한다. 동전 두 개를 한 번에 던져야 하는데, 한 개씩 던졌기 때문이라나.

트레비 분수 또한 세계적인 여행지답게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동전을 던지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였다. 할머니들도 동전을 던지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소원을 빌거나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은 여자들이 더 강한가 보다.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 바티칸도 방문했다. 가톨릭 교황국인 바티칸에 입국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없어 한참을 기다려 들어갔다.

미켈란젤로가 4년 6개월에 걸쳐 그렸다는 시스티나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60살이 넘어 그렸다는 ‘최후의 심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니 큰 차이가 있었다.

역시 미켈란젤로! 미술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아름다움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둥근 천장은 물론 사방의 벽까지 가득 메운 그림에 압도됐다. 벽면의 그림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6명이 그렸고, 천장의 ‘천지창조’만 미켈란젤로가 그렸다고 한다.

천장의 길이는 40m, 폭은 14m. 미켈란젤로는 이를 그린 후 한쪽 시력이 저하됐으며,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걸렸고, 얼굴도 일그러져 추남으로 평생을 혼자 살았다. 이 정도면 예술에 인생을 바친 진정한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켈란젤로가 몸 바쳐 그린, 조각 같이 입체적인 그림을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른 채 보고 또 봤다.

못내 아쉬워 발이 안 떨어졌지만 다음 코스인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예수의 제자이자 최초의 교황인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졌으며, ‘어떤 성당도 성베드로 대성당보다 크게 지을 수 없다’는 불문율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그러나 내부 장식의 아름다움도 내 눈엔 최고였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석상 ‘피에타’는 파손 방지를 위해 방탄유리로 둘러싸여 멀리서만 볼 수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뒤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누워 있는 예수를 형상화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슬픔이 내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석상인데도 마리아의 섬세하게 구겨진 옷은 부드러운 찰흙을 주물러 만든 것 같았다.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발다키노 제단은 교황만이 오를 수 있고, 베드로의 무덤은 이 제단 밑에 있다. 이 때문에 여기서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신자들뿐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거대함과 화려함에 정교함을 더한 성베드로 대성당의 외부는 광장이다. 예수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하나님의 집에 초대하는 모습으로 조성했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그 양쪽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두 개의 분수대가 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 전 물로 죄를 씻는 분수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분수대의 물을 머리 위에 뿌린 후 성당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로마를 벗어나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폼페이로 갔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 엄청난 화산재가 폼페이를 덮쳤다. 바닥으로부터 7m 높이까지 쌓였던 재는 비가 오면서 그대로 굳었다. 또 반경 30km까지 유황 가스가 덮쳐 도시 안의 생명이 거의 다 죽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는 지금 봐도 믿기 어려울 만큼 계획적이고 도시적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공중목욕탕은 오늘보다 뒤지지 않고, 맷돌도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아 반갑다.

마차가 다니는 길과 인도를 구분했고 마차가 머무는 주차장도 만들었다. 마차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만든 징검다리는 기능이 횡단보도와 비슷하다. 상수도가 연결됐고 50m 이내마다 분수를 설치해 우물로 썼다.

2천 년 전 한반도의 모습은 어땠을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비교해보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이더스] 2천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 2

오현숙

- 배낭여행가 / 여행작가 / 약 50개국 방문

- 저서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 등

- insumam42@ hanmail.net

lonaf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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