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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맹타파> 일제가 1945년 한반도에서 핵실험 했다고?

송고시간2018-10-05 09:21

1945년 8월12일 흥남 앞바다에서 '버섯구름' 증언 존재

일본군부, 패망직전까지 본토에서 한반도로 옮겨 핵개발 주력

핵문제 본질과 강대국 세계전략, 북한 핵문제 역사적 맥락 살펴봐야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1945년 7월16일 오전 5시 30분, 미국 뉴멕시코 앨러모고도 공군기지 사막지대에서 태양이 폭발한 것과 같은 거대한 섬광이 대지를 흔듭니다. 곧이어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 올랐습니다.

지구상 최초의 핵실험은 이렇게 우리 인류에 다가왔습니다. 이 핵실험을 실행한 미군의 작전 암호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트리니티(Trinity)'입니다. 트리니티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성령 등 세 위격을 뜻합니다.

그리고 미군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1945년 8월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합니다. 두 곳에 떨어뜨린 핵폭탄은 각각 다른 종류였는데,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은 우라늄 폭탄이었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이 플루토늄 폭탄이었습니다. 각각 13만5천명과 6만4천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엄청난 충격 속에 일본 제국주의는 항복합니다.

그런데 그 일제가 바로 그 즈음 한반도 흥남 앞바다에서 핵실험을 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북맹타파'의 코너인 '이우탁의 핵과 세계정치'에서는 1945년 8월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작은 원폭 실험이 있었다는 증언과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다뤘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미국은 일제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촉구했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이 어전회의를 열었지만 일본 군부는 항복 수락 반대를 요청했고, 바로 그동안 준비해온 원폭 실험을 했다는 겁니다. 만일 일제가 미국에 앞서 핵실험에 성공했고, 원자폭탄을 손에 쥐고 가미카제식 자살 공격을 벌였다면 세계는 어찌됐을까요.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들은 물론이고 독일과 일본 등 동맹국들도 경쟁적으로 원폭개발에 뛰어듭니다. 1896년 베크렐이 우라늄 염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것을 우연히 처음 발견한 이후 물리학계에서는 원자구조와 방사능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더니 1938년 드디어 핵분열이라는 발견이 이뤄집니다. 독일의 오토한과 슈트라스만이 우라늄 핵을 중성자로 때리자 두 개의 가벼운 방사성 동위원소 바리움(Ba)과 크립톤(Kr)이 만들어지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아인슈타인은 핵분열 발견 이듬해인 1939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권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히틀러의 움직임이 심상찮으니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E=mc²)이 핵무기의 이론적 기초가 됐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1941년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이 시작됐습니다. 책임자는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인 당년 37세의 오펜하이머였습니다.

인류가 넘어서는 안되는 금단의 땅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핵폭탄을 개발한 대가는 혹독합니다. 인류는 영원히 핵공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핵실험에 참여했던 물리학자들도 죄책감 속에 번민의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반핵활동에 뛰어들지요.

핵무기는 이후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됩니다. 핵무기가 갖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는 핵무기 개발 이후 오히려 대규모 전쟁을 덜 겪게 됩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불균형은 심화합니다.

세계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하고 핵무기를 갖게 된 나라들은 세계 강국으로 군림합니다. 한반도의 운명도 직접 영향을 받습니다. 왜 전범국 일본이 아닌 한반도가 분단의 짐을 뒤집어쓰게 됐고, 이후 미소 냉전의 굴레에 빠져들어 가게 됐는지를 알게 된다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가공할 핵무기를 먼저 보유한 나라들은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비보유국에 대하여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동시에 금지하는 조약, 즉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1969년 유엔총회에서 통과시킵니다. 이후 핵비보유국 중에서 생존을 위해, 그리고 이웃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핵 개발을 추진하는데. 북한도 대표적인 사례에 속합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냉전과 탈냉전 이후의 세계질서가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핵과 세계정치' 코너에서 앞으로 계속 살펴볼 예정입니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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