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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우리동네] '전방의 라스베이거스' 화천 사방거리

민통선 길목…진짜 사나이 된 앳된 청춘 '바깥세상'
시대 변화로 침체…평화분위기에 새로운 변화 '꿈틀'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장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20여분쯤 차를 달리면 민통선 길목 사방거리가 나온다.

중동부전선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젊은 날의 그곳이다.

화천 사방거리
화천 사방거리

사방거리는 6·25전쟁 이후 제대자들이 고향으로 가지 않고 터를 잡으면서 생긴 마을이다. 행정지명으로는 상서면 산양 1, 2리다.

최전방 철책 주변 대성산과 백암산, 적근산, 추파령 등 험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다.

흡사 병영의 벙커 같다. 산양리의 산양(山陽)은 산속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데 골바람이 모이기 때문일까.

겨울철이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 전국 장병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도 얼어붙는다.

화천군 옛 산양리 마을전경[화천군 제공]
화천군 옛 산양리 마을전경[화천군 제공]

산양리가 사방거리로 더 알려진 이유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사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서 나왔다는 설.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 산양역이 있을 정도로 번화한 거리여서 장날이면 상인들이 이곳에서 사방으로 흩어진다고 해 생긴 지명이라는 것이다.

사방거리에 대한 옛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

화천군이 발간한 민속지(2004년 발간)와 군지(2008년)에 담긴 내력에 조선시대 마을을 오가기 위해 반드시 산양역을 거쳐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천의 옛 명칭은 낭천(浪川)이다. 낭천 3개의 역 중에서 산양역은 동서남북으로 길을 냈다.

옛 지도에 표시된 화천 산양리[화천군 제공]
옛 지도에 표시된 화천 산양리[화천군 제공]

춘천, 양구, 철원, 김화, 북한땅 회양까지 연결됐다.

토박이 주민 함흥근(66)씨는 "사방거리에 일제강점기 때 600여 가구가 모여살 정도로 상당히 번성했던 곳이지만, 6·25전쟁 이후 폐허로 변했다가 다시 마을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사방거리에는 상수원인 산양천 외에 철책을 관측하는 칠성전망대 안내소와 군인 동상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 눈요깃거리가 거의 없다.

하지만 중동부전선에서 군대 생활을 한 이땅의 수많은 남자들에게 초코파이보다 더 달콤한 추억이 어린 곳이다.

군복을 입고 '진짜 사나이'로 다시 태어난 앳된 청춘들은 사방거리의 중국집에서, 다방에서 젊음을 꽃피웠다.

화천 산양리 군인 동상
화천 산양리 군인 동상

군부대가 밀집한 탓에 외출과 외박 나온 빡빡머리 병영 추억이 아직도 늙은 군인의 훈장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실 도피처'로, 누군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찾았던 부대의 통제를 벗어나 맛보던 꿀맛 같던 '바깥세상'.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데다 마을 전체가 수복지역인 탓에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개발에 제한을 받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방거리는 춘천보다 더 유명한 명성을 얻었다.

1970∼1990년대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위수지역이 변경되기 전까지 부대 주변에서만 소비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방거리는 면회객과 군인으로 넘쳐났다.

화천 사방거리
화천 사방거리

폭염과 폭설에도 외출증을 손에 쥔 청춘은 한껏 군복의 옷날을 세우고 사방거리에서 1박2일의 자유를 누렸다.

이 때문에 거리는 자연스럽게 군인 소비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솔져 스트리트'가 됐다.

산양리 전체 주민이 1천여명이 안 되지만, 1만여명의 장병이 주변에 주둔한 것으로 추산된다.

평일 낮이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가는 군용트럭의 살풍경은 주말이면 전혀 다르게 변신했다.

전국 곳곳에서 온 차량이 2차선 좁은 거리를 채웠다.

오랜만에 만난 군인들 가족, 애인, 친구들로 성황을 이뤘다. 식당과 여관은 자연스럽게 늘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사방거리 주변에만 130개에 달하는 업소가 있을 정도로 상권이 붐볐다.

[쉿! 우리동네] '전방의 라스베이거스' 화천 사방거리 - 6

한때 마을에 15곳이 넘는 다방과 유흥주점은 물론 서울 변두리에나 있었던 양장점과 양화점까지 있었다.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의 군인 전용 극장까지 생기면서 제법 도시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

거리 곳곳에는 여흥 소리가 넘쳐났다.

반면 부대 복귀 시간이 가까워질 때면 어머니는 아들 손을 놓지 못했고, 아버지는 뒤돌아서 참았던 눈물을 훔치는 서정적인 풍경도 가득했다.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의 현장이기도 했다.

마을은 2000년 밀레니엄(millennium)을 전후해 위수지역 확대 등 시대의 변화 속에서 위축됐다.

지역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군인들이 화천읍으로 나가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00㎞, 춘천에서 40㎞가량 떨어진 먼 거리이지만 도로가 좋아지고 승용차가 일상화되면서 찾아오는 곳에서 나가는 곳이 됐다.

마을 주민이 떠나고 가게도 줄었다. 현재 업소라야 40여 곳이 전부.

옛 사방거리[주민 함흥근 씨 제공]
옛 사방거리[주민 함흥근 씨 제공]

특히 군부대의 훈련이 있거나 남북관계 긴장으로 외출·외박 금지가 잦아져 경기는 더 어려워졌다.

급기야 건물 노후화로 그나마 있던 군인들마저 외면해 마을이 거의 소멸위기까지 몰렸다.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있다.

주민과 군인이 손을 잡았다.

군인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형적인 구조를 벗어나고자 100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부터 만들었다.

또 군부대는 해마다 마을 거리에서 축제를 열고 주민도 힘을 합쳐 산천어축제를 즈음해 물고기를 낚는 '동동축제'를 열었다.

지난달 시행된 평일 외출장병과 남북 평화 분위기는 마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천 사방거리 동동축제[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천 사방거리 동동축제[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원도는 이 마을을 평화지구로 선정해 3년간 경관 개선 등에 지원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상인들도 변화의 바람에 발맞춰 신세대 장병 코드에 맞추고 있다.

카페, 편의점, PC방 등이 다시 문을 열고, 리모델링으로 최근 상가가 60여 곳으로 늘어났다.

음식점도 저마다 젊은층 입맛에 맞는 요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친절 서비스로 무장했다.

작은 영화관 내부[연합뉴스 자료사진]
작은 영화관 내부[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명희 산양리 번영회장은 "번성했던 옛 명성은 위수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제는 마을이 군인과 함께 더불어 생활하는 것은 맞지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테마를 찾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정착, 부친의 뒤를 이어 생업에 종사하는 2세대다.

수많은 청춘이 군 복무를 마치고 사방거리를 떠났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이 만든 추억에 안주하지 않고 세대를 잇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

길연수 산양2리 이장은 "최근 우리 마을에도 젊은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등 세대가 점차 바뀌고 있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남북화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는 요즘 사방거리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ha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9/29 11: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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