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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평양은 어땠을까…곳곳이 명소, 평안감사는 '꽃보직'

송고시간2018-08-15 08:29

돈과 권력 쫓아 전국 최고 기생 모여들어…사신단은 융숭한 대접

국학진흥원 '평양, 그곳' 소재 웹진 8월호서 소개

부벽루에 올라 벌인 잔치(그림 정용연)[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부벽루에 올라 벌인 잔치(그림 정용연)[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조선 시대 평양은 어땠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발행한 웹진 담(談) 8월호에는 '평양, 그곳'이란 주제로 조선 시대 평양을 소개하는 스토리테마파크가 눈길을 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지만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와 문화에서 찾아낸 갖가지 재미있는 '평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 시대 평양은 중국 사신들이 한양에 왕래할 때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둘러볼 만한 명소가 많다.

만약 딱 하루만 평양에 갈 기회가 있다면 여러 명소 가운데 어디를 둘러봐야 할까 고민을 해야 할 정도다.

먼저 대동문을 지나 대동강 가에 있는 연광정을 보고, 부벽루와 북성 일대를 찾아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볼 것을 권장한다.

이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긴 뒤 날이 저물어 어둑해지면 애련당을 찾아가 호젓한 달밤 정취를 느껴본다.

조선 시대 연광정이나 부벽루 같은 전각에서는 기생들 춤과 노래를 즐기는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해동지도 평양부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해동지도 평양부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권벌이란 관료가 1539년(중종 34년) 7월 17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연경(燕京)에 다녀오며 남긴 조천록(朝天錄)에 그런 자세한 기록이 실렸다.

같은 해 8월 9일 사신단 일행은 평양에 도착해 재송정(栽松亭)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대동강으로 간다. 감사 김인손이 배를 띄우고 풍악을 울리며 술자리를 베풀었다.

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 가서 부벽루에 올라 밤이 다 가도록 술을 마셨다. 이때 기녀가 말을 타고서 횃불을 잡고 춤추며 노래했고 악공은 걸어가며 곡을 연주했다.

사신단은 나흘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고 8월 13일 아침 평양을 떠났다.

이들이 한양에서 출발해 의주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 남짓 걸렸는데 국가 공적 임무를 띤 사신이어서 관청마다 숙식을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사행(使行·사신이 되어 길을 가는 일)을 떠나는 관료는 자기가 머무는 고을에 국왕 명을 받든다고 해서 종종 요란한 접대를 요구했다.

게다가 대로변 큰 고을은 물론 근처 작은 고을 수령까지 와서 이들에게 문안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나 중국에 들어서면 사신단 일행이 받는 대접은 매우 굴욕이었다.

조선에 오는 중국사신은 '칙사(勅使)대접하듯' 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우리 측 사신은 지방관이 마지못해 중앙 지시에 따르는 것처럼 하지만 별로 성의가 없었다.

심지어 사행단(使行團) 숙소가 겨울에도 난방이 잘 안 되고 찢어진 창호도 바르지 않고 방치했다. 이에 우리 선발대가 미리 가서 문도 바르고 청소도 해야 할 정도였다.

전국 기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은 평양으로 모여들었다.

평안감사는 가장 좋은 관직으로 손꼽혔다. 평안도와 함경도 조세를 중앙으로 상납하지 않고 관향곡(管餉穀·관향사가 관장하는 군량미)이라 하여 지방에 비축해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안감사는 다른 곳보다 훨씬 넉넉한 비용을 쓸 수 있었다. 즉, 평양은 전국 최고 기생이 몰려올 정도로 권력과 돈이 모이는 부자 지역이었다.

조선말 평양 냉면가게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조선말 평양 냉면가게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조선 시대 안동에 산 선인들 기록에는 평양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언급한다.

첫째는 단군과 기자, 동명 도읍지로서 평양이다. 1325년(충숙왕 12년) 평양에 기자 사당을 세웠고, 1356년(공민왕 5년)에 이를 중수한 것은 고려 후기 주자학을 수용함에 따라 유교문화 시원으로 기자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려한 대동강 경관을 배경으로 평안감사가 연 화려한 잔치와 풍류이다.

평안도는 중국과 접경 수비를 위해 공물, 부역 등 세수를 중앙으로 보내지 않고 스스로 운영했다.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해 다른 곳보다 물산이 풍부했다. 이에 평양감사 위상과 권한 또한 높았다.

셋째는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과 관련한 것이다. 이 밖에도 평양 유생이 조선 최고 학자 퇴계 선생 흔적을 찾아 안동 도산서원에 왔다는 기록 등이 있다.

편집장을 맡은 천준아 작가는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북한과 자유로운 왕래가 머지않았다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 조선 시대 평양으로 피서를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8월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창작소재 4천270건을 구축해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kimh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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