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반전에 또 반전…익산 쌍릉 주인공 찾기 미스터리

송고시간2018-07-18 09:02

대왕릉 유물 분석 결과, 2년만에 '젊은 여성→노인 남성'

"무왕 무덤 가능성 크지만 확정 못해…추가 연구 필요"

익산 쌍릉 인골의 주인공은 누구?
익산 쌍릉 인골의 주인공은 누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 분석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 실제 발굴뼈가 전시되고 있다.
scape@yna.co.kr

익산 쌍릉 대왕릉 전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익산 쌍릉 대왕릉 전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천400년 전 무렵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왕릉급 무덤인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의 주인공을 가려내기 위한 연구가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917년 이후 한 세기 만에 다시 발굴한 익산 쌍릉 대왕릉에서 발견한 인골을 분석해 추정한 '60대 전후 남성 노인, 키 160∼170.1㎝, 사망 시점 620∼659년'이라는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쌍릉 인골 분석결과 발표하는 이우영 교수
쌍릉 인골 분석결과 발표하는 이우영 교수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 분석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우영 카톨릭의과대 교수가 브리핑하고 있다. scape@yna.co.kr

이는 국립전주박물관이 2016년 일제강점기 조사 때 대왕릉에서 수습한 치아가 20∼40세 여성의 것이고, 신라계 토기가 보인다고 밝힌 것과는 상반되는 결론이다.

익산 쌍릉은 대왕릉과 180m 떨어진 소왕릉으로 구성된다. 대왕릉과 소왕릉은 설화 서동요(薯童謠) 주인공으로 익산에 새로운 백제를 건설하려 했던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힌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졌다.

그러나 전주박물관이 2년 전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대왕릉에 매장된 인물은 남성이 아닌 여성일 가능성이 크고, 신라계 토기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신라 진평왕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무덤 주인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시됐다.

전주박물관 연구는 2009년 미륵사지 서탑에서 절을 창건한 사람이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沙宅績德)의 딸이자 백제 왕후(王后)'라고 기록된 사리봉영기가 발견됐음에도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믿은 사람들에게는 반색할 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무덤 내부에서 나온 인골함을 근거로 대왕릉은 무왕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을 내놨다.

목제유골함에 들어있던 익산 쌍릉 유골
목제유골함에 들어있던 익산 쌍릉 유골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 분석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 목제인골함(오른쪽부터), 실제 발굴뼈, 3D복제뼈가 전시되고 있다. scape@yna.co.kr

대왕릉은 조사 결과 무덤방이 매우 크고 공들여 다듬은 재료로 정교하게 조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왕릉급 무덤이 확실시됐는데, 여기에 인골 분석 결과도 7세기 초반 사망한 키 큰 남성 노인이라고 나오면서 대왕릉은 무왕 무덤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전주박물관의 기존 발표에 대해 "치아만으로는 성별과 연령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들었다"며 "이번에 확인된 인골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치아도 남성 노인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라계 토기도 전형적인 신라 토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듯하다"며 "비슷한 토기가 익산에서도 나온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익산 쌍릉 대왕릉 석실 벽면 조사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익산 쌍릉 대왕릉 석실 벽면 조사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반전에 또 반전…익산 쌍릉 주인공 찾기 미스터리 - 4

이처럼 대왕릉을 무왕 무덤으로 볼 만한 분석 결과가 공개됐지만, 현 시점에서 무덤 주인을 무왕으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쌍릉은 고려 충숙왕 때인 1327년 도굴됐다는 기록이 있고, 무엇보다 인골이 무덤 주인공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골 102개에 동일한 부위가 없어 한 개체에서 나왔을 확률이 높지만, 일제강점기 조사자들이 여러 사람의 인골을 모았을 가능성도 있다.

대왕릉 주인에 대한 또 다른 실마리는 소왕릉 조사에서 발견될 공산이 크다. 연구소는 본래 올해부터 소왕릉을 발굴할 예정이었으나, 대왕릉 주변 지역 조사를 위해 발굴 시기를 내년 이후로 미뤘다.

연구소 관계자는 "대왕릉 내부에서 벽화나 묵서 흔적은 찾지 못했다"며 "일제가 소왕릉을 조사하고 대왕릉처럼 유골을 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흥미로운 사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무덤 주인공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제시대 상장례(喪葬禮)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