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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출신 가수가 이끈 대중가요…일제강점기 서울사람의 여가는

송고시간2018-05-01 11:23

'일제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 발간

일제 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
일제 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

[서울시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식민통치의 어둠 속에서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여가를 즐겼을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일제강점기 서울 사람(경성부민)들의 여가생활을 조명한 연구서 '일제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서울에는 3·1 운동을 기점으로 다양한 여가시설이 생겼다.

위기에 봉착한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교화'를 명목으로 공원·도서관·운동장 등 공공시설과 극장, 영화관, 카페·바·주점, 경마장·마작장·당구장을 만들었다.

이즈음 라디오와 음반 청취가 새로운 취미로 등장하고, 외식은 '행복한 가정'을 표상하는 문화 현상으로 대두했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여가생활에 차이가 난다는 점도 인식되기 시작했다.

음반 산업도 성장했다. 음악 녹음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 조선 회사가 일본 본사에 의존하는 식민적 구조였다. 일본 본사와 조선을 연결하는 레코드회사 간부는 일본 유학파거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일본 제국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인의 '슬픈 이미지'를 마케팅에 적극적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부민관의 모습
일제강점기 부민관의 모습

[서울시 제공]

1930년대에는 기생 출신 여가수가 대중가요 시장을 점령했다. 바와 카페를 통해 일본 음주문화가 퍼져나가고, 작부를 고용하는 '개량 선술집'도 생겨났다.

한강 수영장은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과 낚시터로 변신하며 행락지로 명성을 떨쳤다. 인도교, 뚝섬, 서빙고 수영장은 하루에 2만∼3만명이 찾을 정도였다.

실내수영장을 만드는 기술이 도입돼 경성운동장과 용산 철도국, 학교 내에는 수영장이 생겼다.

전시 체제에 들어서자 경성부는 '황군 전사'가 될 아동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학생들을 합숙시키며 수영연습을 시켰다. 징병 대상자를 위한 수영 강습회도 열렸다. 조선의 행락시설은 차츰 전쟁 수행을 위한 곳으로 변해갔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일제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은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매를 원한다면 서울시민청의 '서울책방'을 찾으면 된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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