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 여는 과학자 이기진 "물리학과 예술은 통한다"
송고시간2018-04-10 06:00
가수 씨엘 아버지로도 유명…롯데갤러리 청량리점서 29일까지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서강대 물리학과 이기진(58) 교수의 연구실은 '만물상'에 다름 아니다. 형형색색 찻잔부터 달항아리, 용수철저울, 로봇, 장난감 인형, 피규어 등 온갖 물건이 과학 서적과 자료 사이를 비집고 들어 앉았다. 캐비닛 벽면에는 재미난 표정과 형상을 한 얼굴 그림 수십 점이 빼곡히 붙어 있다.
이기진 교수가 평생에 걸쳐 모으고 만들고 그려온 것들로, 롯데갤러리 청량리점에서 열리는 개인전 '과학자의 만물상' 주인공들이다. 롯데갤러리가 4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이 교수에게 연락하면서 그의 첫 개인전이 마련됐다. 10일 전화로 만난 이 교수는 "전시를 위해 정리하다 보니 '내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기는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껄껄 웃었다.
전시에는 두 딸이 어렸을 때 그려준 로봇 시리즈 깍까, 루브르박물관 아트숍에서도 판매된 로봇 도자기, 큰딸과의 파리 여행을 담은 그림들, 수집품 그림 등 500여 점이 나왔다.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으로 완성한 그림에는 이야기와 위트가 넘친다. 그의 그림 내력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가득 찼던 1980년대 체육관 지붕에 올라가 수성페인트로 "천사가 방독면을 쓰고 하늘을 나는 그림을 그렸다가" 학교를 뒤집어놓은 일도 있었다.
"다들 어려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철이 들면서부터 그림을 안 그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계속 무엇인가를 그렸어요. 제가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리는 것이 좋았거든요."
이 교수는 낮에는 학교에서 마이크로파 연구에 매진한다. 오후 6, 7시쯤 학교를 나온 뒤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갖가지 물건을 수집한다. 골프를 치지 않고 술자리도 즐기지 않는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딴짓'은 예술이다.
언뜻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물리학과 예술이야말로 서로 통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과학자의 마음이 예술가의 마음과 같아요. 과학도 예술도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일이고, 과학도 예술처럼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라 보거든요."
이 교수의 큰딸은 걸그룹 2NE1으로 활동했던 가수 씨엘(본명 이채린)이다. 그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선 딸의 공연을 직접 보면서 자랑스러움과 애틋함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현재 외국에 있는 딸은 귀국하는 대로 전시를 보러오겠다고 했다고.
"물리학도 예술도 제 삶에 영감을 주며 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연구도 '딴짓'도 열심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청량리점 전시는 29일까지. 전시는 6월 1~24일 잠실점에서 이어진다. 문의 ☎ 02-3707-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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