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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이끈 우주…'다중우주론'이 펼친 새로운 음향세계

송고시간2018-04-01 12:04

서울시향 현대음악 연주회 '아르스 노바' 리뷰

지난달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 관현악 콘서트를 지휘한 현대음악 거장 페테르 외트뵈시가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 관현악 콘서트를 지휘한 현대음악 거장 페테르 외트뵈시가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음악의 진동을 쐬는 기분이었다. 특히 헝가리 작곡가 외트뵈시의 '다중우주론'이 뿜어낸 다채로운 진동은 단지 '귀'라는 감각기관 하나만으로 수용할 수 없을 만큼 광대했다. '다중우주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곡은 우리를 변화무쌍한 우주 공간 속으로 이끌며 시간이 정지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난달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관현악 콘서트에선 외트뵈시의 신작 '다중우주론'을 비롯한 3곡의 초연작들이 발표됐다. 이번 공연에선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페테르 외트뵈시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자신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신작을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현대음악 지휘에 뛰어나기로 정평이 난 외트뵈시는 난해하고 낯선 현대작품들을 익숙한 곡을 다루듯 능수능란하게 지휘해냈다. 지휘봉을 쓰지 않고 마치 합창단을 지휘하듯 손쉽게 지휘하는 그의 지휘법은 언뜻 보면 별다른 기교가 없어 보이지만, 낯선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의 입장에서 그의 지휘를 보면 낯선 음악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정확성과 핵심을 간파하는 통찰력이 있어 신뢰감을 줬다. 쓸데없는 동작 없이 중요한 부분에서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그의 지휘는 연주자들에게 작품의 핵심을 정확하게 전했고, 이는 곧바로 연주에 반영되어 각 악기 군의 개성 있는 음색이나 특징들이 명확하게 표현됐다.

첫 곡으로 연주된 라벨의 '표제'에서부터 이 곡에서 강조된 '5'라는 수는 외트뵈시의 정확한 5박 지휘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고, 곧이어 벤저민과 핀처의 작품에선 각기 다른 개성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번 공연에서 한국 초연된 벤저민의 '춤의 형상'과 핀처의 '다섯 개의 관현악곡'은 각기 다른 음악의 요소에 집중하고 있었다. 벤저민의 작품이 선율과 리듬의 요소가 강조된 친근한 작품이라면 핀처의 작품은 '음색'이란 요소에 있어 대단한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특히 핀처의 '다섯 개의 관현악곡'은 관악기나 현악기 등 악기군의 경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각 악기 군의 음색이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합되어 새롭고 놀라운 음향 세계를 만들어냈다.

휴식 후 연주된 외트뵈시의 '다중우주론'은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서울시향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공동 위촉한 이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 아시아 초연작으로, '다중우주론'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인해 공연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의 주장은 외트뵈시의 곡에선 두 대의 오르간과 여러 악기 그룹에 의해 표현됐다. 이 곡에 편성된 두 대의 오르간 중 하나는 전통적인 파이프 오르간이고 또 다른 오르간으로 미국의 해먼드가 발명한 '해먼드 오르간'이었다. 두 오르간은 각각 지휘자 왼쪽과 오른쪽에 배치됐는데, 그 중 해먼드 오르간의 소리는 객석 2층 스피커에서 소리 나도록 설정돼 있어 음악을 듣던 청중은 간혹 위쪽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에 놀라 위를 쳐다보다가 다시금 전면에서 들려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살고 있던 우주에서 이탈해 또 다른 우주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은 기묘한 체험이었다. 또한 오르간 뒤쪽으로 배치된 현악기 그룹과 금관악기 그룹, 목관악기 그룹, 타악기 그룹이 각기 분리된 채 각기 고유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섞기도 하면서 이 세상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을 암시했다.

외트뵈시의 '다중우주론'이 연주되는 동안 이 곡의 모티브를 분석하거나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모두 헛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곡은 주제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전통적인 유형의 음악이 아니었다. 그저 이 곡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음향 세계에 공명하다 보면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이 음악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매우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외트뵈시의 '다중우주론' 이후 우리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음악이란 단지 선율과 리듬, 화성의 3요소로 된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음악은 단지 귀만으로 들을 수 있는 예술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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