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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살람, 테헤란!"

송고시간2018-04-10 08:01

이란에서 꼭 봐야 할 명소 "너무 많아요"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한국에서 테헤란의 기억은 불세출의 수영 스타 조오련이 금메달을 땄던 1974년 아시안게임에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벌어지고 2주 뒤 열린 터라 남북한의 메달 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한 대회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후 이란은 한국과 가는 길이 전혀 달랐다. 한때 한국에서 온 산업일꾼 2만 명이 일하기도 했다는 이란은 세계 현대사의 최대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전혀 다른 쪽으로 접어들었던 탓이다.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이란의 모스크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이란의 모스크

이란 이슬람 혁명의 기운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으로 흘러 두 나라의 국교는 단절됐고, 이듬해부터 8년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이어지면서 이란과 북한은 '혈맹'으로 가까워지게 된다. 반미·비동맹 운동에 앞장선 이란과 미국의 우방인 한국의 거리는 지난 40년간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란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월 이란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가 해제되면서다. 중동 최대 난제였던 이란 핵 개발 문제가 양측의 역사적 협상 타결로 일단 해결됐고, 닫혔던 이란의 문이 빼꼼히 열렸다. 전면 개방 수준은 아니지만 경제난을 해결해야 했던 이란은 제재 해제에 발맞춰 외국 사람들과 자본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이란 정부는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산업을 살려보려고 한다. 이란은 2천500년 전 제국을 경영했던 페르시아의 후예로 수많은 관광자원을 품은 역사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중동에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곳은 이집트가 아니라 바로 이란(19곳)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 테헤란의 첫인상…십중팔구 "오래됐다"

'세상의 절반'이라는 이스파한과 페르세폴리스로 유명한 시라즈가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이란의 수도이자 관문인 테헤란은 여정의 첫 코스로 꼽을 만하다. 테헤란은 이란의 다른 도시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곳은 아니다. 13세기에 처음 도시로 개발돼 18세기 후반에 와서야 셀주크 왕조의 수도로 지정됐다. 그 전에는 왕의 별장이 있는 도시 정도로 쓰였다.

수천 년 된 고대 페르시아의 유적은 없지만 근·현대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았고 수도로서 이란인들의 일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테헤란의 첫인상은 아마도 '오래되고 밀집된 곳'일 것이다. 건축연도뿐만 아니라 색깔까지 19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토 면적이 한국의 20배에 달하면서도 인구 8천만 명 중 1천만 이상이 모여 사는 테헤란의 도로는 언제나 만원이다. 30년이 넘은 페이칸(이란의 첫 국산차)부터 최신형 벤츠가 차선을 무시하고 뒤섞여 움직이는 도로의 풍경은 매우 흥미롭다. 공기는 매우 혼탁하다. 특히 겨울철엔 공기 오염 때문에 2주 정도 휴교령이 반드시 내려진다.

오래된 자동차와 오토바이, 질이 좋지 않은 연료 탓이다. 테헤란 북쪽 병풍처럼 막아선 4천m 고도의 알 부르즈 산맥은 한여름 서너 달만 제외하고 정상 부근에 쌓인 눈이 덮여있다.

테러리스트로 묘사된 옛 미국 대사관 건물 외벽의 자유여신상 그림

테러리스트로 묘사된 옛 미국 대사관 건물 외벽의 자유여신상 그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장엄하고 우람한 산세가 장관이지만, 이 산맥이 공기 순환을 턱 막고 있어 공기 오염이 더 심각하기도 하다. '중동=사막'이라는 고정관념 탓에 테헤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테헤란은 그렇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엔 폭설이 온다.

스키를 좋아한다면 1, 2월에 테헤란에 오기를 권한다.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스키장에서 싼 가격에 알프스와 흡사한 풍경을 즐기며 자연설 스키를 탈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테헤란 관광코스는 제법 잘 알려졌다. 19세기 카자르 왕조, 20세기 팔레비 왕조의 궁(니여버런, 사다버드, 골레스탄)은 5~6월께 둘러보면 좋다. 왕과 왕비가 살았던 궁궐치고 건물은 소박하지만 엄청난 높이의 나무와 페르시아식 조경은 볼 만하다.

영어의 파라다이스는 페르시아 정원을 의미하는 이란어 '파르디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상에 천국을 재현한 페르시아 정원의 미를 만끽해 볼 일이다. 서울의 남산타워와 비슷한 밀라드타워를 올라가 보면 테헤란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데 공기 오염이 심해 시야가 가려지는 날이 많다.

테헤란 시내 그랜드 바자르

테헤란 시내 그랜드 바자르

◇ 사방천지가 볼 만한 '그랜드 바자르'

테헤란 남부의 중동 최대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는 꼭 가봐야 한다. 하루 만에 다 둘러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다.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듣는 데 시장에 들어서면 그런 '경고'를 까맣게 잊을 만큼 자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란의 모든 물산이 집약되는 곳이라 사방천지가 볼 만한 풍경이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물건을 싸게 살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금액의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노련한 페르시아 상인이 한국에서 이제 도착한 어리둥절하고 들뜬 관광객을 속여 먹는 건 일도 아닐 테다.

아직 외국인 관광객이 익숙하지 못한 테헤란인들은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한 동양인 관광객을 신기하게 쳐다본다. 좀 더 적극적인 이들은 중국어 인사말인 "니하오"라고 말을 걸기도 한다. 그들에게 "살람, 꼬레 조누비"(안녕하세요. 남한사람이에요)라고 답해주면 "조몬"(주몽), "양금"(대장금)이라고 친근함을 표시할 것이다.

이란이 친북 국가인 만큼 현지 미디어에서도 북한 관련 소식을 더 중요하게 보도한다. 그래서 "꼬레이"(코리아인)라고 하면 "쇼말리?"(북)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에 잘 나오지 않는 명소로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가까운 보석 박물관을 들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박물관이 아니라 보석을 보관하는 이란중앙은행의 지하 수장고다. 팔레비 왕조가 모아 둔 금은보화인데 이슬람 혁명이 발발하자 왕가가 이집트로 급히 망명하면서 미처 챙겨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옛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건물도 역사의 현장이다.

테헤란 시내 모습과 대비되는 설산(4천m 고도의 알 부르즈 산맥) 풍경

테헤란 시내 모습과 대비되는 설산(4천m 고도의 알 부르즈 산맥) 풍경

1979년 11월부터 444일간 이란의 강경파 대학생 시위대가 이곳에서 미국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고 농성을 벌였다. 미국이 이란과 단교를 선언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곳은 지금 '미국에 승리한 기념관'으로 일반에 개방됐다. 이란 시위대의 급습에 급박하게 피신한 미국 대사관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이란 정부는 이곳을 '간첩의 소굴'이라고 묘사해 놨다. 시내 곳곳의 모스크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모스크는 걸프 지역의 수니파 모스크에 비해 화려하다.
파란색을 테마로 한 타일로 정교하게 장식됐는데 파란색은 천국을 의미한다.

◇ 디저트가 발달한 이란 음식문화

농축산물이 풍부하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페르시아 문명을 이어받은 덕분에 아랍권과 비교하면 음식이 발달했다. 외국 음식에 관심이 많다면 이란 음식을 탐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중동이라고 하면 직화 양갈비 구이, 케밥 정도를 연상하는데 이런 종류는 물론 독특한 소스와 함께 오래 끓이는 요리법으로 만든 진득한 메뉴가 다채롭다. 한국인의 입맛에 제법 맞는 음식도 많다. 이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더라도 후식은 꼭 맛봐야 한다.

예로부터 떠돌아다니지 않고 일찌감치 정착해 문화를 꽃피운 강대국의 음식문화에는 디저트가 발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란 역시 세계를 호령한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서 디저트가 화려하다. '쉬리니'(단 것)라는 이름의 조각 케이크와 '처이'(차)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는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다.

테헤란 시내를 지나다 보면 곳곳에서 섬뜩한 반미 구호와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이란 국기가 어느 데서나 펄럭이고,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초상화가 '순교자'라는 칭송과 함께 벽면에 그려져 국가주의를 고조한다. 동시에 불법이지만 애플 휴대전화 매장과 서방의 트레이드 마크인 햄버거, 라이선스 없는 코카콜라가 혼재한다. 대학생들이 잘 가는 카페에선 미국 팝송이 흘러나온다.

이방인의 눈엔 혼란스럽지만, 이란 사회의 미국을 보는 복잡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기도 하다. 테헤란 여행을 마치고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나는 이런 곳에 못 살겠다"며 치는 손사래와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라는 놀라움이다.

테헤란에서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 본다면 사실은 하루에도 이런 양극점을 열두 번은 오간다.

테헤란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다만 각자의 마음속을 잠시 되돌아볼 일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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