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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강경젓갈정식

송고시간2018-04-08 08:01

"밥도둑이 따로 없네!"…곰삭은 젓갈에 반찬도 풍성

(논산=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젓갈은 잃었던 입맛도 되찾게 하는 신통력을 지녔다. 따끈한 쌀밥에 속 깊은 젓갈을 살짝 얹어 먹으면 말 그대로 천하의 별미다. 대표적 젓갈 고장인 충남 논산의 강경 땅에 가면 젓갈의 오묘한 맛을 푸짐한 식사로 만끽할 수 있다. 이름하여 강경젓갈정식!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맛깔젓의 본향에서 젓갈의 오묘한 세계와 정식 밥상의 맛깔스러움을 만나본다.

맛깔스러운 명란젓 [사진/임귀주 기자]

맛깔스러운 명란젓 [사진/임귀주 기자]

먼저 강경읍내를 구경 삼아 거닐어보자. 그러면 거리 양쪽에 빼곡히 들어선 젓갈 가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 정도가 아니다. 줄줄이 늘어서 있다고 할 만큼 부지기수로 많다. ○○젓갈상회, ○○젓갈, ○○젓갈백화점, ○○젓갈판매장 등등. 강경 하면 젓갈, 젓갈 하면 강경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서쪽으로 금강을 끼고 있는 강경은 지난해 현재 인구가 9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자그마한 읍소재지다. 하지만 젓갈에 초점을 맞춰보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전국 젓갈 유통량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이곳은 젓갈에 관한 한 1번지나 다름없다. 예전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어든 지금도 염천리와 태평리, 대흥리를 중심으로 120여 개의 젓갈상회가 성업 중이다. 특히 김장철인 가을이 되면 전국에서 몰려든 젓갈 구매자들로 상회와 식당마다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젓갈상회가 즐비한 강경읍내 거리 풍경

젓갈상회가 즐비한 강경읍내 거리 풍경

◇ 200년 전통의 강경맛깔젓

강경이 젓갈의 대표적 본고장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 그 역사는 또 얼마나 될까? 젓갈정식을 맛보기에 앞서 젓갈의 내력과 함께 그 정체를 살펴보는 것이 음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읍 소재지 서편에 유유히 흐르는 금강. 전북 장수에서 발원해 충북 옥천과 대전, 충남 공주, 부여, 강경을 거친 뒤 군산으로 빠져나가는 이 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길다. 바다와 강 등 수상교통이 중심을 이루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금강은 물길의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다.

편리한 수상교통 덕분에 강경은 조선 후기에 한반도의 2대 포구, 3대 시장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2대 포구란 원산과 강경을 말하고, 3대 포구는 대구, 평양, 강경을 이른다. 서해로 이어지는 금강하구와 가까워 수상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해산물과 농산물의 거래가 매우 활발했다. 전성기였던 20세기 전반기에는 읍내 인구가 무려 3만여 명에 달했고, 상인 및 방문객 등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10만여 명이 젓갈거리를 가득 메웠다.

천혜의 이 내륙항이 젓갈 중심지로 부상함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일본강점기만 해도 성어기인 3월에서 6월까지 금강 변의 강경 선착장에는 100여 척의 어선이 정박했고, 전국에서 생선과 젓갈을 사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여관들은 연일 초만원을 이뤘다. 각종 수산물이 왕성하게 거래되면서 남은 물량을 오래 보관하는 염장법(鹽藏法)과 수산가공법도 나날이 발전했다. 강경이 국내 최대의 젓갈 공급시장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1990년에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물길이 막혀 포구 기능을 상실했으나 역사와 전통의 젓갈시장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다.

이번에는 젓갈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대표 반찬이라면 역시 김치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이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바로 젓갈. 채소 의존도가 높은 농경 문화권에서는 나트륨 결핍 가능성이 컸는데 젓갈 섭취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영양과 함께 식욕 증진도 꾀했다.

젓갈은 대표적 발효식품이다.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라고 할 만큼 미묘하게 다르다. 부패가 단백질이나 지방 등의 유기물이 미생물 작용에 의해 악취를 풍기며 분해되는 현상이라면, 발효는 미생물이 자신의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이다.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은 같으나 발효는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부패와 차이가 난다. 어패류로 젓갈을 담글 때 들어가는 소금의 비율은 약 20%. 이 신묘한 조합과 발효의 산물이 바로 젓갈이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강경젓갈정식 상차림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강경젓갈정식 상차림

◇ 명란젓, 낙지젓 등이 함께하는 젓갈정식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강경 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선다. 지난 3월 9일, 한 식당에 들러 이 고장의 대표 음식이라는 젓갈정식 한 상을 주문해봤다. 잠시 후 사각의 밥상에 가득 차려진 풍성한 음식들. 모두 일곱 가지의 젓갈과 함께 열다섯 가지의 반찬이 아기자기하게 놓였다. 여기에 밥과 국, 배추쌈이 추가됐다.

단연 돋보인 음식은 갈치속젓, 창난젓, 명란젓, 낙지젓, 가리비젓, 조개젓, 밴댕이젓, 갈치속젓 등의 젓갈류다. 이들 젓갈은 동그란 사기 종발에 담긴 뒤 다시 모듬 쟁반에 옹기종기 놓였다. 조개젓을 제외하고는 붉은 색조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각기 청고추, 홍고추, 통깨가 살짝살짝 얹혀져 시각과 미각 그리고 후각적 효과를 더했다.

이중 값이 가장 비싼 명란젓은 쟁반의 한가운데 놓여 귀족 대접을 받았다. 명태 알을 소금에 절여 담갔는데 씹을 때마다 알이 톡톡 터지며 고소함을 더했다. 조개젓은 조갯살을 발라내어 소금에 재워 익혔다가 갖은 양념으로 무친 것. 키조개를 사용한 가리비젓은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낙지젓은 낙지를 가늘게 잘라 소금에 절인 다음 양파, 마늘, 생강, 물엿 등으로 무침을 해 삭힌 것이란다.

젓갈과 함께 밥상에 놓인 반찬은 게장, 꽃게무침, 상추와 부추 겉절이, 양배추데침, 목이버섯볶음, 멸치볶음, 호박전, 간 천엽 요리, 돼지불고기와 상추, 된장찌개 등으로 풍성했다. 1인분 가격이 1만원이어서 가성비가 무척 높은 편. 물론 식당에 따라 젓갈과 반찬 종류에서 다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서울에서 온 식당손님 장인호(51) 씨는 "젓갈의 고장에서 다양한 젓갈 음식을 풍성한 반찬들과 함께 맛볼 수 있어 좋다"며 "색깔도 선명하고 알이 톡톡 깨지는 느낌도 그만인 명란젓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강경 주민인 이병철(48)·임순분(48) 부부는 "요즘의 젓갈 음식은 과거에 비해 짜지 않아 젊은이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곰삭은 젓갈 맛을 좋아해 수시로 이곳에 와서 젓갈을 사 가곤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젓갈을 지하 깊이 토굴을 파서 항아리에 저장하곤 했으나 요즘은 창고형의 인공 숙성실과 보관실을 이용한다. 재래식 토굴이 아닌 현대화되고 과학적으로 시설된 저온창고에서 석 달 동안 발효시켜 무기질과 단백질, 지방, 아미노산 등 영양분이 그대로 보존되면서도 특유의 감칠맛이 일품이라는 것이다.

다만 근래 들어 젓갈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공급과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새우젓의 경우 4년째 바다에서 잘 잡히지 않아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값이 대폭 올랐다. 오젓, 육젓, 추젓 등 새우젓은 그만큼 식탁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강경전통맛깔젓사업협동조합의 최충식 조합장은 "어획량 감소로 공급이 줄긴 했으나 우리 지역의 가게와 식당들은 수입젓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옥녀봉에 자리 잡은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 초가지붕이 이채롭다.

옥녀봉에 자리 잡은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 초가지붕이 이채롭다.

◇ 젓갈젓시관 등 볼거리 즐비…가을엔 발효젓갈축제

젓갈정식 등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고 난 뒤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면 즐거움은 한껏 커진다.

강경젓갈의 이모저모를 한눈에 보고 배우기에 딱 좋은 곳 중 하나가 황산리의 금강 변에 있는 강경젓갈전시관이다. 강경 특산물인 젓갈을 홍보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건립한 이 전시관에서는 인간과 소금의 만남, 염장법과 음식문화, 강경젓갈 역사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대형 선박 모형의 이 전시관의 꼭대기 층에 가면 전망대와 모형조타실이 있어 금강과 강경읍내 등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에 좋다.

전시관에서 북쪽으로 저 멀리 바라다보이는 옥녀봉도 금강과 논산평야 그리고 강경읍내를 사방으로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옛 이름이 '강경산'인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로, 특히 해 질 녘에 서쪽을 내려다보노라면 강물과 갈대밭에 반사되는 노을빛 햇살이 눈 부시도록 아름답다. 이곳 옥녀봉 기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 예배지인 옛 강경침례교회가 'ㄱ자' 모양의 초가집으로 복원돼 있어 고풍스러운 정취를 더한다.

근대역사 문화유산의 고장인 강경읍내에서는 강경침례교회 외에도 1905년 건립됐던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현 강경역사관), 강경포구의 하역 노동자들의 조직체였던 옛 강경노동조합(현 강경역사문화안내소), 1923년 건립된 전통한옥 예배당인 옛 강경성결교회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죽림서원, 임리정, 팔괘정 등 조선 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여행지가 많다.

한편 김장철인 가을이 되면 강경포구와 젓갈시장, 젓갈공원, 옥녀봉 일대에서 정부가 선정한 '문화관광 우수축제'인 논산강경젓갈축제가 열려 강경젓갈의 역사와 맛, 그리고 신명을 다채롭게 느끼게 해준다. 강경읍내의 젓갈상회가 모두 참여해 강경 맛깔젓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축제는 황석어젓 만들기, 젓갈반찬 만들기, 강경포구 탐방, 조선 3대 시장 홍보관 체험, 보부상 난전재현놀이, 젓갈김치 담그기, 양념젓갈 만들기, 전국마당극경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부대행사로 진행된다. 22회째인 올해 축제는 10월 17일부터 2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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