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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리말 둘이 만나니 시가 되네…이정록 '동심언어사전'

복합어 316개의 예쁘고 재미난 뜻, 사전 형식 시로 풀어내
순우리말 둘이 만나니 시가 되네…이정록 '동심언어사전'0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죽을 때까지 모으면/왕딱지 두 장은 접을 수 있을걸." ('코딱지' 전문)

코와 딱지가 만나 만들어진 말 '코딱지'를 생각하며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시인 이정록(54)은 일반인과 다른 시인만의 발상으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 말의 재미를 이렇게 살려내 우리에게 전해준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모국어에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말이 많은데, 특히 단어와 단어가 만나 이뤄진 복합어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고 이정록 시인은 말한다. 그 특별한 재미를 시로 써 묶은 책이 '동심언어사전'(문학동네)이다. 시집으로 보면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한 문예 강의에서 동시와 동심에 관해 설명하며 예로 '콧방귀'와 '황소걸음'을 들다가 문득 이런 동심언어를 본격적으로 파고들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코와 방귀, 황소와 걸음이 만나는 곳에 동심이 있다는 것이다. "낱말과 낱말이 만날 때 둘은 어린아이처럼 껴안는다. 언어는 동심의 놀이터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또 "하나의 언어는 자의적으로 생겨나지만, 낱말과 낱말이 만나 '겹낱말'이 될 때에는 의미 전달이라는 실용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꽃봉오리가 펼쳐진다. 두 언어가 '범벅말'이 되는 과정에 재미가 끼어들고, 마음의 기원이 깃든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는 그렇게 시인이 주목한 316개의 순우리말 복합어가 담겨 있다. 사전처럼 가나다 순으로 '가갸말', '가난살이', '가는귀' 식으로 이어져 '흙이불', '흙장난', '힘줄'로 끝난다. 시인은 그 말들을 시로 풀어 본연의 재미난 뜻을 살리면서 시인만의 눈으로 숨은 뜻을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얹기도 했다.

이정록 시인
이정록 시인

시인은 "내 시쓰기는 얕고 보잘것없으나, 팔짱언어에 서려 있는 오랜 사람들의 입김을 믿었다. 언어에는 인간 본성의 따듯함과 사랑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이 책은 읽는 내내 봄날의 햇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지핀다.

'가로쓰기'란 말을 시인은 이렇게 풀어냈다.

"땅바닥에 애호박 하나씩 놓고 가는/호박넝쿨의 가로쓰기가 좋다./바다를 건너는 배의 하얀 물띠가 좋다./대륙을 잇는 철길의 가로쓰기가 좋다./네게서 건너오는 따스한 눈길이 좋다./풀밭을 찾아가는 누떼의 삐뚤빼뚤한 밑줄이 좋다./강까지 달려온 얼룩말들의 천릿길 흙먼지가 좋다./강남에서 날아온 지친 제비를 앉히려고/겨우내 흐헝흐헝 울던 전깃줄의 가로쓰기가 좋다./네가 고개를 끄덕일 때보다는/가로저을 때, 더 어여쁘다." ('가로쓰기' 전문)

'늦깎이'에서는 늦었다는 뜻보다 새로 피어난 희망과 용기를 본다.

"늦었다는 생각을 싹둑 도려낸 사람/늦었다고 생각할 시간마저 아낀 사람/두려움을 설렘으로 감싸안은 사람/망설임이란 제자리걸음을 떨치고/온 힘으로 자신의 꿈을 마중나간 사람/우물 밑바닥에 살던 자신을 두레박질한 사람/(중략)/해낸 사람이 아니라 하고 있는 사람/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달려가는 사람/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배냇저고리처럼 웃는 사람" ('늦깎이' 중)

예쁘게 소리나는 '사이시옷'은 사랑과 이어진다.

"사랑도 사이시옷 만들기야./사이시옷은 사람과 닮은 꼴이지./풋사랑에서 하나를 만들고/첫사랑에서 억만 개를 감싸 안지./사랑은 끝없이 언제나 첫사랑이니까./손깍지 속에는 사이시옷이 몇 개나 될까./사랑하면 다 시인이 되지./시인은 세상 모든 사이시옷과/손깍지를 끼는 사람이니까." ('사이시옷' 중)

428쪽. 1만6천500원.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3/15 07: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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