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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끔찍한 전쟁의 현장, 젊은 독자들 생생히 느끼길"

안재성 작가, 한국전쟁 체험 실존인물 수기 바탕으로 소설 출간
"70년 전 끔찍한 전쟁의 현장, 젊은 독자들 생생히 느끼길"0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이 다 파괴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실제 경험한 사람의 수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한 여러 인물 평전과 역사 소설을 써온 안재성(58) 작가는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새 장편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창비)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소설은 정찬우(1929∼1970)라는 실존 인물의 수기를 바탕으로 작가가 재구성한 이야기다. 정찬우의 삶은 어느 역사소설의 주인공 못지않게 파란만장했다.

전북 고창에서 대지주의 자손으로 태어난 그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명석한 두뇌와 학구열로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수재로 이름을 날리다 독립군인 조선의용군에 투신해 활약하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해방 후 본인의 성정이 군인보다는 학자나 교사에 맞는단 판단에 이북의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 수학하고 졸업해 평양제일여자고급중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그러나 1950년 7월 4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열흘째 되던 날 그는 남조선으로 내려가 사회주의 교육을 맡으라는 당 중앙의 지시를 받고 고위 간부인 '교육위원' 직함으로 인민군과 함께하게 된다.

그는 평양에서부터 서울을 지나 전선을 거쳐 내려가면서 온갖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미군의 무차별 고공 폭격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주변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삶과 죽음의 운명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에서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몸서리치는 환멸을 느끼고 이상에만 머물렀던 사회주의 사상도 버리게 된다.

'전쟁의 참상 렌즈에' 6·25 당시 희귀사진
'전쟁의 참상 렌즈에' 6·25 당시 희귀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소설의 후반부는 그가 국군에 생포돼 포로수용소를 거쳐 군사재판으로 10년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한 시간을 그린다. 주변에는 인민군 간부였다가 신분을 세탁하고 남한 관리들의 앞잡이가 돼 동료들을 괴롭히는 악마 같은 인간들이 있다. 그런 모략 속에서도 그는 인간애와 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수감 생활 도중 자유의 가치를 몸소 체득하고 사상 전향서를 쓰기도 한다. 소설은 그가 1960년 교도소를 나오며 끝난다. 이후 고향의 초야에 묻혀 살던 그는 결국 교도소에서 당한 심한 고문의 후유증 탓인지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안재성 작가는 그의 자손이 50년 가까이 간직해온 수기를 재작년에 넘겨받아 소설을 집필하게 됐다고 했다.

"원고지 1천장 분량의 수기였습니다. 원래는 이걸 다듬어서 그대로 책으로 내려고 했죠. 그런데 글이 아무래도 지금 감각으로 봐서는 출판하기 어려운 옛날 문투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읽혀보니 도저히 못 읽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의 언어로 다시 쓸 수밖에 없었죠. 불필요한 내용도 많아서 1/3 이상 버리기도 했고요. 역사적인 배경이나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 관해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조금 더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긴 했지만,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진짜 작가이자 주인공인 정찬우의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70년 전 비극적인 역사의 희생양이 된 그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의 독자들에게 절실하게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과 북이 나뉘어 항상 전쟁 위험을 안고 있잖아요. 전쟁은 모든 것을 전혀 다른 상황으로 만든다는 것을 사람들이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고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고 큰 잘못을 했다고 보지만, 이 책은 그런 잘잘못을 가리는 것을 떠나 전쟁 자체를 반대하기 위해 쓴 거예요. 한국전쟁을 그동안 큰 그림으로만 봤지, 이렇게 세밀하게 들여다본 이야기는 처음이고, 민간인이 아니라 전선에서 직접 겪은 일을 리얼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중에도 총 한 발 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 노력하고 양심을 지키려고 애쓴 정찬우의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다음 달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관해 "남과 북 사이에 아픈 과거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평화적으로 교류를 열고, 통일까지는 멀더라도 절대 전쟁이 안 난다는 걸 모든 사람들에게 인지시켜주는 단계까지 갔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3/14 16:0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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