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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미 투"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들의 눈물

이주여성들과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장에서 '미투'(#Me Too)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주여성들과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장에서 '미투'(#Me Too)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의 외침이 국내에 상륙한 뒤 검찰, 문화예술계, 종교계, 대학가, 방송가, 정계 등으로 번져가며 강고하게만 보이던 이른바 마초 문화와 갑질 풍토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피해 여성들이 당당히 나서 권력자들의 부끄러운 행각을 고발하는 상황에서도 차마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수 없어 가슴앓이만 하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지위가 가장 취약하다 할 수 있는 이주여성 피해자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장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발표회는 사실 이주여성의 '미투' 동참을 선언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들이 여전히 '미투'를 외칠 수 없는 처지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행사 이름에 걸맞지 않게 피해 당사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 함께하지 못했고, 이주여성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상담사와 통역사 등이 피해자들의 사연을 대신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발표자들도 용기를 내 같은 이주여성들의 사례를 폭로하는 것이니 근접 촬영은 하지 말고, 피해 당사자의 신원도 묻지 말아 달라"고 보도진에게 거듭 당부했다. 행사장 바닥에는 녹색 테이프로 사진기자들의 접근을 막는 포토라인을 표시해놓기도 했다.

2017년 12월 17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수도권 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17년 12월 17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수도권 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주여성들이 털어놓은 사연은 기가 막혔다. 딸의 산후 조리를 위해 방한한 베트남 여성 A씨는 농사일을 도우러 여동생 집에 갔다가 사돈(여동생 시아버지)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다. 사돈은 말리기는커녕 망을 봐줬다.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의 충격으로 입원했고, 고향에 소문이 나면서 온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필리핀 여성 B씨는 언니의 결혼식을 보려고 아버지, 오빠와 함께 방한했다가 예식 4일 전에 형부가 될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베트남 여성 C씨는 남편이 여동생을 성추행하자 여동생과 아이 3명을 데리고 이주여성쉼터로 피신했다가 한국 국적도 없는 상태에서 살길이 막막해 눈물을 머금고 남편 곁으로 돌아갔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 D씨는 일도 서툴고 한국말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장이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부끄럽고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어 참고 지냈는데 사장의 성추행과 성폭행은 그치지 않았다. 사업장 기숙사의 남녀 구분이 돼 있지 않거나 잠금장치가 없어 이주남성 노동자 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있었디. 태국 여성 E씨는 90일 무비자로 한국에 와서 마사지 일을 하면 월 150만∼2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대구의 한 마사지숍에 취직했으나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하루에 남성 5∼7명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라고 강요받았다. "중개업소의 약속과 다르다"며 돌아가겠다고 하자 사장은 항공료와 중개수수료를 합쳐 1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소가 2017년 접수한 성폭력 상담 건수는 456건에 이른다. 실제 피해 사례는 전국적으로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함께 2016년 5∼8월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2.4%가 성폭력 피해를 봤으며, 가해자의 64.0%는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64.4%)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52.6%)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15.8%) ▲가해자가 두려워(10.5%) ▲한국에서 추방될까 봐(5.3%) 등의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복수응답).

사회적 지위가 낮고 신분이 불안정할수록 성폭력을 당할 위험은 커지고 이를 폭로할 가능성은 작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주여성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지위에 놓인 '약자 중의 약자'인 데다 체류 자격마저 불안해 매우 높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법률 지식이 없고 한국어가 서툴며 아는 사람마저 적어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는 형편이다. 이날 발표자들도 피해자들이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모를 뿐 아니라 법적 대응에 나선다 해도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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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관련 단체 종사자들은 이주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족쇄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을 꼽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의 사건이 일어나면 직장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고용주 승인 없이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을 옮길 수 없으므로 가해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업장을 무단 이탈하면 체류기간이 남아 있어도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이 되기 때문에 이를 약점 삼아 피해자를 협박하며 성폭력을 계속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합법적으로 국제결혼해 이주한 여성들도 신분 불안정 때문에 온갖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적법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해 2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면 간이귀화를 할 수 있으나 법무부의 적격심사 과정에서 남편이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자녀가 없거나 관련 서류를 갖추지 않으면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남편은 아내가 한국 국적을 얻으면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심사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출국은 2차 가해"라면서 이들의 합법적 체류 보장과 결혼이주여성의 신분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의 가해자는 '미투'의 폭로 대상처럼 유명인이거나 권력자가 아니지만 공장 감독관, 마사지업소 사장, 농장주 등 평범해 보이는 한국 남자들도 이주여성에게는 생살여탈권을 지닌 권력자로 비친다. 지금 당장 '미투'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주여성들의 신음과 한탄에 귀 기울이고 '위드유'(#With You, 당신과 함께)를 외쳐야 한다. '미투'는 세상 어디에서도 변명이나 예외가 존재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미 투"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들의 눈물3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3/13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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