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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썰매하키선수 외신조명…"극복한 사람으로 불러주오"

꽃제비·탈북·장애 딛고 태극마크 따 최고무대 입성
가디언, 평창 동계패럴림픽 나서는 최광혁 성취이야기 소개
최광혁의 돌진
최광혁의 돌진[강릉=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오는 9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 대표팀의 탈북민 선수 최광혁(31)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탈북민 출신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처음 패럴림픽에 도전하는 최광혁의 인터뷰를 게재하고 그의 인생 역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북한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7살 때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그는 2년 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생계를 책임지려고 인근 역에서 승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팔아 굶주림을 해결했다.

아이스크림 상자를 들고 무임승차를 했다가 역무원에게 혼나는 게 두려워 종종 열차의 지붕이나 측면에 매달려 역과 역 사이를 오가던 그는 어느 날 열차 지붕에서 떨어지면서 왼쪽 발이 열차 바퀴에 깔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당시 북한 병원의 열악한 의료환경 탓에 의사들은 그의 왼쪽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해버렸다.

최광혁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내 발을 고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북한의 의료는 너무 열악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처우가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북한 사회에서 졸지에 장애인이 된 그는 함께 노숙 생활을 하던 다른 꽃제비들로부터도 버려졌고 아이스크림 장사도 할 수 없게 돼 구걸해야 했다.

그는 "북한 사회에선 어디에나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심지어 거지들 사이에서도 그렇다"며 "장애인들은 그중에서도 언제나 늘 바닥"이라고 말했다.

2001년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던 아버지가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서 그를 데려오면서 한국으로 온 최광혁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방황했다.

많은 탈북 청소년처럼 그도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줄담배를 피우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2년여가량 허송세월했다.

그러다 한국복지대학에 진학해 우연히 교직원의 소개로 2015년 장애인아이스하키를 처음 접하면서 올해 세계랭킹 3위의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로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올해 동계패럴림픽은 특히 북한 대표단이 참가해 그에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북한 선수단은 2012년 런던 하계패럴림픽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동계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최광혁은 이번 대회에서 북한 대표팀을 상대로 출전하지는 않겠지만 선수촌에서 북한 측 대표단과의 만남은 어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나는 그들을 보면 반갑겠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 반가워할 것 같지 않다"며 "그들은 나를 반역자라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꽃제비, 탈북민, 장애인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짊어지고 살았던 그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그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나는 그때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지만, 탈북민이나 거지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며 "그러나 고통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한국을 대표해 아이스하키를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이 장애인아이스하키를 얘기할 때 내 이름을 언급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mong0716@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3/06 16: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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