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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화마 겪은 숭례문…복구 마지막 과제는 '단청'

문화재청, 전통 재료·기술 연구…"재단청 시기는 미정"
숭례문 단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숭례문 단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0년 전인 2008년 2월 10일 사람들은 익숙지 않은 풍경에 눈을 의심했다.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의 목조 부분인 문루가 화염에 휩싸여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로 189㎝, 세로 282㎝ 크기의 육중한 나무 현판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낙심은 더욱 커졌다. 조선이 건국한 직후인 1398년 축조된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은 방화 사건으로 인해 610년 만에 2층 문루를 잃는 피해를 봤다.

2013년 5월 숭례문은 5년 3개월간의 공사 끝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복구공사를 통해 조선시대 후기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해 단청이 벗겨져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숭례문 복구의 마지막 과제가 됐다.

숭례문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숭례문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천연안료와 접착제 개발 중…"2020년 전통 단청 시방서 완성"

숭례문 단청 박락은 복구공사가 종료된 직후부터 일어났다.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시공법을 적용하고, 화학접착제를 천연접착제인 아교에 몰래 섞어 쓴 것이 원인으로 조사됐다. 당시 단청을 맡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보유자 자격이 박탈됐다.

사실 천연안료와 접착제를 이용한 전통 단청기법은 198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문화재 수리와 복원에도 '아크릴 에멀전'이라는 화학접착제와 화학안료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숭례문 복구는 전통기법을 최대한 적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진행됐다. 부재(部材·건축물 재료) 운반에는 기계를 사용했으나 가공은 수작업으로 했다. 예컨대 석공사를 할 때는 돌을 가르는 것부터 다듬는 것까지 정과 망치만을 사용했다.

숭례문복구단장을 맡았던 최종덕 문화재연구소장은 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숭례문 이전까지 우리나라 건축 문화재 보존과 수리는 전통기법과 재료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며 "숭례문에는 수십 년 만에 전통 단청기법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단청 공사 실패로 발생한 박락은 복구공사 이후 1년간 453곳에서 발견됐으나, 지난 1년 동안은 29곳에서만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단청이 안정화됐다고 판단하고, 재단청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4년부터 진행한 천연안료 연구가 올해 마무리돼 품질 인증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천연접착제인 아교는 한국전통문화대에서 학술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천연안료를 제작하는 업체는 늘었지만, 문제는 아교"라면서 "균등한 품질의 아교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개발 전까지는 일본산 아교를 단청에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재료 연구를 추진하는 한편 전통 단청을 할 수 있는 인력을 기르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20년까지 전통 단청의 시공 기준이 되는 시방서와 요령을 담은 기술교범을 완성하고, 2021년까지는 매년 2∼3곳에서 전통 단청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단청 시기는 전통 단청 재료와 숙련된 인력이 갖춰졌다고 인정될 때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숭례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숭례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성벽 복원되고 지붕 모양 달라진 숭례문

숭례문은 복구공사를 거치면서 화재 전과는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문 서쪽에 16m, 동쪽에 53m 길이의 성벽을 거느리게 됐다. 성벽이 생기면서 숭례문이 한양도성의 출입구였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명확해졌다. 또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숭례문 동쪽에 있는 계단의 폭이 2.9m에서 5m로 넓어졌다.

숭례문 아래에 있는 지반도 발굴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태조 때 조성한 기초와 지층 위에 30∼50㎝가량의 15세기 지층이 존재하고, 그 위에는 약 1m 높이의 17세기 지층, 박석, 25∼60㎝ 상당의 일제강점기 지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복구된 숭례문은 화재 이전보다 지반이 30∼50㎝ 낮아졌다.

지붕 형태에도 변화가 있었다. 숭례문은 한국전쟁 이후 응급복구를 거쳐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수리됐다. 당시에 정확한 고증 절차 없이 복원했던 것을 바로잡아 지붕 가장 위에 있는 용마루는 늘리고, 추녀마루 길이는 줄였다. 1층 추녀마루 위에 있는 잡상은 8개에서 7개로 감소했다.

최종덕 소장은 "거의 직선이었던 숭례문 용마루와 추녀마루가 1960년대 수리 이후 곡선으로 변해 단아했던 품위를 잃었다"며 "복구 당시 지붕 내부 구조도 전통 공법에 근거해 옛 모습으로 변모시켰다"고 설명했다.

세로쓰기로 돼 있는 숭례문 현판의 서체도 수정됐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至德祠)에 보관돼 있던 숭례문 현판 탁본과 비교해 숭(崇) 자와 례(禮) 자의 오류 일곱 부분을 고쳤다.

아울러 화재에 대비해 스프링클러, 소화전, 방수총, 화재탐지설비, 불꽃감지기 등이 곳곳에 설치됐다.

화재 직후 숭례문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재 직후 숭례문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2/08 16: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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