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한인사회당 100년] ⑥ 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장 "지금 잣대로만 보면 안돼"

서울법대 때 6·25 발발하자 입대, 육군소장 전역후 20년째 기념사업 류준형 씨
매년 1월31일 현충원서 추모식, 올해 83주기…"무덤·기념관·동상 없어 죄스럽다"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아직까지도 성재 선생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안타깝고 죄스럽다"고 토로했다.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아직까지도 성재 선생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안타깝고 죄스럽다"고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일제가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강토를 유린할 때 독립지사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국권을 되찾는 데 몸을 던졌다. 무장투쟁이 급선무라는 주장, 교육과 계몽으로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그룹, 외교를 통해 해결하자는 목소리에다 공산혁명 세력과 손잡으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성재(誠齋) 이동휘(1873∼1935)는 구한말 군인 출신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면서도 기독교 전도에 나섰고 사회주의 사상도 받아들였다. 여러 단체를 거치며 이상설·이승만·오하묵·김구 등 다른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대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났다. 오로지 독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만 생각하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준형(88) 회장도 그런 이동휘의 소신과 행적에 감화돼 20년째 기념사업회에 몸담으며 현양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성재 선생이 한인사회당을 창당하며 레닌과 손잡은 것은 독립자금이 필요해서였을 겁니다. 자신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무산자들을 잘살게 하겠다는 혁명세력의 뜻에 공감하기도 했겠죠. 선생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려 한 것은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있는 판단입니다. 지금의 잣대로만 보면 안 되죠."

류 회장의 선대 고향은 서울 뚝섬이나 아버지가 검사를 거쳐 함경남도 함흥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다가 1946년 남하했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 법대에 다니던 중 6·25 전쟁이 터져 유엔군 연락장교(통역장교)로 입대해 임관했다.

인민군에게 납북된 아버지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1952년 보병으로 병과를 바꿔 1952년 다시 임관했지만 끝내 아버지는 찾지 못했다.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1공수여단장, 한미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1985년 1월 5일 소장으로 전역했다.

"저도 사실 그전에는 이동휘 선생을 잘 몰랐습니다. 정부도 1995년에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을 추서했으니까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는데도 이승만과 불화하고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다 보니 공적이 깎이고 존재가 가려졌죠. 나중에 일대기를 읽어 보니 대단한 분인데도 그동안 몰랐던 것이 죄송스럽더군요."

류 회장이 함경남도 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1998년 '성재 이동휘 일대기'를 펴낸 한국외대 사학과 반병률 교수가 찾아와 기념사업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 달라고 부탁해왔다. 성재의 고향 단천이 함남인 데다 류 회장도 같은 군인 출신이어서 동질감을 느껴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3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3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는 1999년 2월 서울YMCA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조향록 목사가 초대 회장을 맡고 그는 상근부회장으로 일하다가 2010년 4월 조 목사가 별세한 뒤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다른 기념사업회와 비슷하게 기념일마다 회원들이 모여 행사를 치르며 그분을 기립니다. 국가보훈처 등과 협력해 유족과 연락하며 초청 행사를 열기도 하고, 회원들이 선생 발자취를 답사하기도 합니다."

기념사업회는 매년 1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추모식을 올린다. 올해는 83주기를 맞았다. 오는 6월 20일에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추모의 광장의 성재 애국어록비 앞에서 탄생 145주년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이동휘가 상해임시정부 총리로 부임한 11월 3일에도 부정기적으로 기념행사를 치른다.

기념사업회가 해온 일 가운데 류 회장이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2004년 이동휘 집안인 하빈 이씨 문중의 도움으로 성재 어록비를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07년 이동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 충렬대 무후순국선열제단에 봉안한 것이다.

화강석으로 된 어록비 앞면에는 "이천만 동포는 다 최후의 일인이 필사(畢死)하기까지 최후의 일인의 혈점(血點)이 필적(畢滴)하기까지 독립을 필성(必成)코야 말 줄로 확신하노라…"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약전(略傳)을 기록해놓았다.

"선생은 무덤이 없고, 기념관이 없고, 동상이 없습니다.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비교할 때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2005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선생의 유해를 찾으러 갔다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아파트가 지어져 있어 빈손으로 돌아왔죠. 기념사업회 회원 수가 60여 명에 지나지 않는 데다 정부와 민간의 도움을 얻기도 쉽지 않아 기념관이나 동상을 세울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인근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곳에 초대 국무총리이던 성재의 유물 전시 공간을 마련하기로 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습니다."

성재 선생이 받은 건국훈장 대통령장과 성재 선생 사진 앞에서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재 선생이 받은 건국훈장 대통령장과 성재 선생 사진 앞에서 류준형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1/31 06:30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