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여대는 남성에 대한 성차별인가요?"
송고시간2018-01-25 08:00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요즘 같은 시대에 여대가 굳이 필요한가요? 남자라서 못 가는 대학이 있다는 건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성신여대가 지난 21일 개혁 방안의 하나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하겠다고 밝히자 일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여자만 입학이 가능한 여대의 특징은 남자를 배제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여자대학교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의 입학을 불허한다"며 "이는 남성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 여대가 생긴 지 131년. 현재 남아있는 여대는 총 7개로 서울에 6개, 지방에 1개가 존재한다. 긴 역사를 이어온 여대를 둘러싸고 '남녀공학 전환' vs '여대 정체성 유지'라는 시각이 충돌하고 있다.
◇남학생들 이대 로스쿨 입학 놓고 법적 공방
여대가 차별이라는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남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준비생들이 이화여대 로스쿨이 여성의 입학만 허용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송모(25)씨 등 청구인 3명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인가한 로스쿨 전체 정원인 2천 명 중 100명을 할당받은 이화여대가 여성에게만 입학을 허용하기 때문에 남자 로스쿨 정원이 1천900명으로 제한된다"며 "이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헌재는 2013년 "이대 로스쿨이 여성만 선발하겠다는 입학전형계획을 인가한 것은 남성인 청구인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사립대학인 이화여대가 로스쿨에 여학생만 모집하는 것은 여자대학으로서 전통을 유지하려는 자율권에 속하고 여학생만 뽑기 때문에 발생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가 과도하게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를 차별이라고 보는 결정이 나온 바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82년 7월 미시시피 주 오코너 법원은 미시시피 여대에 남학생을 입학시키지 않는 것을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 하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서울 수도권 4년제 사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24)씨는 "로스쿨뿐만 아니라 의대, 약대 등 인원이 극소수인 전문적인 과 역시 여대이기 때문에 여자만 입학이 가능하다"며 "남자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대 위기설까지…수험생 줄고 취업률 낮아
여대 스스로 고민도 깊다. 남자 입학생을 모집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김호성 성신여대 총장은 "여대로 특성화하는 게 더 낫다면 당연히 여대로 남아야겠지만, 지금 이대로는 전망이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공론화해 구조적 불이익 제거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여대는 수험생의 절반인 여학생 중에서만 뽑아 '수험생 모집'에서, 여대 출신은 사회적 차별로 남녀공학 출신보다 불리한 '취업'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수험생은 감소하는 추세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는 59만3천527명으로 2017학년도 60만5천988명보다 1만2천406명(2%) 줄었다. 2020년부터는 고교 졸업자 수보다 대입정원이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져 여대가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유는 여학생 마저도 여대 기피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16년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은 '여자대학'보다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점 따기가 힘들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졸업생 취업률이 낮은 것도 고민거리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 시내 26개 대학의 평균 취업률은 53%였지만, 여대 취업률은 47%에 그쳤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2015년 덕성여대와 숙명여대가 각각 남녀공학 전환 검토와 대학원 남학생 입학 허용을 추진했으나,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거센 반발로 입장을 철회했다.
◇여대 역사와 정체성 유지해야…"여대의 역할 필요하다"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역사와 전통은 물론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시각이다. 특히 여대 안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숙대를 졸업한 장모(30)씨는 "한국은 여전히 남성주도사회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여성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여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성평등 수치가 낮은 수준이라는 시각이 많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144개국 중 116번째였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자체 집계한 '유리천장지수'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 회원국 가운데 직장 내 여성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숙대 박사과정을 준비 중인 안모(30)씨는 "방향성은 남녀공학으로 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학 교육과 같이 여성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여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전 기획처장)는 "남녀공학은 통계적으로 학생회 활동, 과대표, 리더훈련이 남학생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하지만 여대에서는 모든 형태의 리더 역할을 여자들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도 여대와 관련한 문제 제기가 많이 이뤄졌고, 실제로 1960년만 해도 268개의 달했던 여대가 2016년 기준 44개로 감소했다"며 "하지만 여성에 100% 집중하는 여대의 필요성 역시 무시할 수 없으며, 미국 명문 여대 역시 여성 인력 양성에 집중해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내외적으로 남녀공학 전환 문제에 부딪힌 여대. 이를 놓고 다양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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