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지구촌 남녀 임금격차 완전 해소에 217년 걸린다"
송고시간2018-01-20 08:00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혜영 인턴기자 = 직장인 10년 차 박 모(여·35) 과장은 얼마 전 비정부기구(NGO) 단체로 이직했다. 이번이 세 번째 일터다. 차별은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박 과장은 "승진이나 연봉, 성과 등 남자 동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종종 받아 왔다"며 "대부분 남자 위주로 조직이 세팅돼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항의해도 바뀌지 않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체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성별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을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각종 지표에 따르면 유리 천장을 실감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제 활동 여성들이 늘고 있다. 지구촌 '직장인 유리 천장'에 대해 짚어봤다.
◇ 이공계 계열 여성 종사자 절반, 성차별 받아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등 이공계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이 일반 직장에 비해 더 성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이공계 종사자 여성 중 절반은 '자신의 성별로 인해 직장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서 이공계 종사자 남성은 19%에 불과했다.
또 '자신의 성별이 직장에서의 성공에 어려움으로 작용한다'고 답한 여성도 20%에 달했다. 7%에 불과한 남성에 비해 3배에 달하는 비율이다.
차별은 처우에서도 존재한다. '동일 직종의 이성보다 급여를 덜 받았다'고 답한 여성은 29%로 남자(6%)보다 훨씬 많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활동 참여 및 기회 분야는 정치적 권한 분야와 더불어 남녀 격차가 가장 심한 편이다. 교육 성과나 건강 분야는 이전 조사에 비해 크게 좁혀진 데 반해, 경제적 격차는 더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WEF는 "지구촌 남녀의 경제적 차별을 완전히 없애려면 217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2017년 3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남녀임금 차별 철폐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17.3.8
◇ 차별 철폐…목소리 내는 여성들
직장 내 여성 차별에 대해 당사자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지난해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포춘 500대 기업을 비롯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의 여성 CEO의 비율이 6%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영국 BBC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캐리 그레이시 중국 에디터가 사내 남녀 임금 차별에 항의하며 보직에서 사퇴했다.
BBC에 따르면 그레이시는 "나를 포함한 여성 국제 에디터는 같은 직종의 남성에 비해 50% 이상의 임금을 덜 받고 있다"며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비합리적인 임금 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일 남성과 여성이 다른 보직을 맡고 있는데 차이가 난다면 이해한다"면서도 "BBC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영국 평등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BBC는 자사 임금 체계 검토 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9.3%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약 500명의 직원이 성별 차이로 인해 같은 업무를 맡은 동료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레이시는 "여성이 투표권을 확보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금 차별이 존재한다"며 "다음 세대 여성 직원들을 위해 내가 나서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7월 아이슬란드에서 발생한 성별 임금 차별 철폐 시위 장면(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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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 있어서 남녀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 지난 3일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아이슬란드가 세계 최초로 성별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다"고 보도했다. 1961년 이후 60년 가까이 남녀 임금 차별 철폐를 위해 꾸준히 싸워 온 결과다.
아이슬란드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남녀 임금 격차를 좁힌 뒤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이다. 또 같은 일을 했는데 성별을 이유로 임금을 적게 지급한 고용주에게는 벌금을 매긴다.
미국 NBC 뉴스는 지난 13일 아이슬란드의 변화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할 수 있을까?"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여성할당제도 추진된다. 지난해 11월 영국 가디언은 유럽연합(EU)은 직장 양성평등을 강화하기 위해 EU 내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 중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를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EU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대형 상장사 여성 구성원 비율은 22%로 나타났다.
◇ 아직 갈 길 먼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직장 내 유리 천장은 아직 견고하다. WEF가 발표한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여성 경제 활동 참여 및 기회 분야 순위는 144개국 중 121위에 그쳤다. 칠레(117위)나 바레인(120위)보다도 낮은 순위다.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 중 하나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학력에 따른 성별 임금 차별은 대졸 여성이 가장 심하다고 밝혔다. 여성 임금이 남성의 70.9%로 중졸 이하(71.3%)나 고졸(73.1%), 대학원졸 이상(83.5%)보다도 낮았다.
한국고용정보원 측은 이런 현상에 대해 "여성이 결혼과 출산 등을 겪으면서 경력이 단절된 뒤, 노동 시장에 재진입할 경우 이전보다 열악한 일자리에 재취업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근속 연수 별 성별 임금 격차를 분석했을 때 4년 이상에서 10년 미만이 74.5%로 1년 미만을 제외하면 가장 낮았다.
한 대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육아 휴직을 낸 이지선(여·31·서울시 연남동) 씨는 이런 이유로 걱정이 많다. 올해 안에 복직해야 하는데, 지금껏 출산 후 돌아온 여자 선배들이 퇴사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여자는 애 낳으면 오래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며 "육아냐, 직장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남자 직원들에게는 이런 걸 두고 양자택일 하라고 하지는 않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정부도 격차 해소 필요성에 동감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여성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며 남녀 간 불평등 해소 방안을 언급했다. 2019년부터 여성이 임금이나 승진 등과 관련해 차별 대우를 받을 경우 사업주가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물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 또 같은 해부터 남녀고용평등법이 5인 미만 전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전처럼 성별에 따라 기본금이나 연봉에서 노골적으로 격차를 두지는 않는다"면서도 "수당이나 상여금 등 임금 외적인 부분에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 내부적으로도 이런 구조화된 차별에 대해 정상화하려는 노력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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