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늘] 그날 생긴 상처, '총탄 소나무'의 증언
송고시간2018-01-21 10:10
1월 21일에는 이런 일이
50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울에 나타난 북한
1월 21일에는 이런 일이
50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울에 나타난 북한
(서울=연합뉴스) 서울 북악산에 있는 '총탄 소나무' 혹은 '1.21 소나무'입니다. 남북 간 치열한 교전으로 생긴 15발의 총탄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9명 사살, 1명 생포, 1명 도주. 만 50년 전에 일어난 '1·21사태' 이야기입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우리 군 복장을 하고 수류탄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채 침투했습니다. 서울 세검정까지 내려왔으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공작원들은 시내버스도 공격해 무고한 시민 5명도 살상했습니다.
김신조는 공작원 중 유일하게 생포된 요원입니다. 조사를 마친 김신조는 결국 귀순합니다. 1942년생으로 지금은 서울 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2012년 육군 25사단 주최 행사에서 당시에 자신이 임진강을 건넌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김신조의 주장에 따르면, 또 살아남은 다른 한 요원은 박재경입니다. 그가 맞는다면, 박재경은 무사히 북으로 도주해 영웅으로 환대받으며 인민무력부 대장까지 올랐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송이버섯 선물을 가지고 내려왔으며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도 개성에서 송이버섯을 선물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서울 종로경찰서 총경 최규식입니다. 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했습니다.
공비들은 특수부대 '124군'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북한 정찰국 산하로 적극적인 유격전을 수행할 목적으로 1967년 창설된 부대입니다.
이 사건으로 남북 긴장은 최고조에 도달했습니다. 아래는 1968년 2월 중순 미국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밴스가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하는 모습입니다.
'1·21사태'하면 바로 떠오르는 제도가 있습니다. '향토예비군'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해 4월 1일 곧바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했습니다. '내 마을은 내가 지킨다'는 기치였습니다. 북한의 '노농적위대'에 대응하기 위해 편성한 비정규군 강화책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울은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로 통하는 주변의 길목이 모두 폐쇄된 것입니다. 북악산, 인왕산은 물론이고 침투 및 은신장소로 활용된 북한산도 일부 대상이었습니다.
2009년에는 '우이령길' 폐쇄가 해제돼 시민들의 등산로로 개방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6월 26일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통제구역인 '청와대 앞 밤길'이 열렸습니다. 50년 만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교류가 활발합니다. 올림픽 첫 단일팀, 개회식 공동입장 등이 성사됐습니다. 그리고 1·21사태 50주년인 이날, 북한 예술단 점검단이 서울로 왔습니다.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 등이 서울역에 도착하는 모습입니다.
50년 만에 북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울에 왔습니다.
doh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1/21 10: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