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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위협 속 농장 경영하는 남아공 백인들…"매년 수십명 피살"

(나이로비=연합뉴스) 우만권 통신원 = "그들이 몽둥이로 남편을 두들겨 팼어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요."

데비 터너는 조용하지만 격앙된 목소리로 남편이 살해되던 당시의 상황을 되뇌었다.

터너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를 하곤 했으며 머리맡에는 항상 남편의 사진이 놓여 있다.

터너는 농장이 괴한들의 공격을 받은 뒤 줄곧 지내 온 노인 병동 앞의 벤치에 앉아 "남편이 매우 그리워요. 그래서 아주 힘이 들어요'라고 말했다고 AFP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6세이던 로버트 터너는 6개월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동부 림포포 주에 있는 산악지역의 외딴 농장에서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괴한들의 몽둥이 세례에 비명횡사했다.

그는 최근 남아공에서 주로 백인 농장주들을 겨냥해 발생한 폭력 사태의 희생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분리정책)가 끝난 뒤 지난 25년간 농촌 지역에서 꾸준히 지속된 유사 범죄로 정치적 대립과 인종 간 긴장이 이어졌다.

농장주 살해는 남아공이 안고 있는 폭력 문제와 경제 침체, 그리고 인종 간 긴장상태를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터너 부부는 30여 년 전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과 인근국 짐바브웨가 만나는 이곳 삼림 지역에 터를 잡고 수십 에이커에 달하는 부지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어 공예품 제작과 땔감용으로 판매했다.

터너 여사는 "5~6년 전까지만 해도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녀도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대도시들이 겪던 극단적인 폭력 사건들이 이들 농장과 같은 시골에도 들이닥친 것이다.

가택침입, 인질극, 그리고 몇 푼 안 되는 돈이나 휴대전화 또는 사냥총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일상화됐다.

터너 부부는 지난 6월 14일 저녁 어둠이 내리고서 2명의 무장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터너 여사는 남편이 수도꼭지를 고치기 위해 밖으로 나간 뒤 혼자 집 안에 있었다.

터너 여사는 "그들은 돈을 달라고 했지만, 돈이 없다고 말했어요"라며 "괴한들은 온 집안으로 나를 끌고 다니다가 샤워기 밑에 던지고서 15분간 놔뒀어요. 그러고서 나를 강간하려 했지만 '에이즈에 걸렸으니 강간하지 말라'고 말했지요"라고 전했다.

얼마 후 터너 여사는 금고 열쇠를 요구하는 범인들에게 야만적으로 두들겨 맞아 피로 뒤범벅된 남편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아공에서는 매년 수십 명의 백인 농장주가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서 목숨을 잃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그 피해 규모와 범위는 점점 심각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9%의 남아공 백인 인구를 대변하는 압력단체인 아프리포럼(AfriForum)은 농장주 살해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단체 중 하나이다.

이 단체의 부대표인 에른스트 로어츠는 "농부들이 격오지에 살고 있어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 문제에는 정치적 요소도 내포돼 있다. 일부 정치인은 '모든 것은 백인들 책임'이라는 등 혐오를 부추기는 연설을 일삼는 데 이는 염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극좌파 성향의 정치가인 줄리어스 말레마를 언급하며 '백인들로부터 농장을 빼앗자'라는 선동적인 발언을 한 그를 비난했다.

남아공 극좌파 정치인인 줄리어스 말레마[구글 자료사진]
남아공 극좌파 정치인인 줄리어스 말레마[구글 자료사진]

앞서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지난 2012년 과거 독립투쟁 시절의 '농장주를 쏴라, 보어인을 쏴라'라는 구호가 담긴 투쟁가를 부른 적이 있다.

남아공에서는 농업도 다른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대 때 이주해 온 백인들의 후손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백인 농장주들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을 선언한 1994년의 85%에 비하면 그 비율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전체 경작지의 73%를 소유하고 있다.

실업자가 늘면서 흑인 인구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경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자는 요구가 거센 이유이기도 하다.

흑인들은 소수 백인이 국부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가운데 백인 농촌사회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43세의 한 백인 여성 농장주는 "우리는 사냥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백인들은 현재 자신들이 겪는 폭력 사태를 식민지배 시절에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통용되던 '인종학살'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그들(흑인들)은 진정 우리가 자신들로부터 나라를 빼앗았다고 생각한다"라며 "우리가 이 나라를 세웠다. 흑인들이 세운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그들은 건설할 줄 모르며 파괴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극단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지난달에는 백인들이 과거 백인 소수정권의 깃발을 흔들며 농장주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정부에 백인 농장을 위한 특별 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지만 피킬레 음발룰라 남아공 치안장관은 단호히 거절했다.

장관은 그의 트윗 계정에 '모든 남아공 사람의 죽음을 규탄한다. 농장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고 정치적 동기가 포함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흑인 농부들은 아직 백인 농부들의 시위에 참여하지 않지만, 흑인들도 위협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남아공흑인농부협회(AFASA)의 부요 말라티 회장은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라며 "우리는 농업이 극우 정치인들의 놀음에 이용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백인 농장주는 이제 정부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권총을 차고 야간 순찰을 하는가 하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군사훈련을 받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림포포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세 아이의 어머니인 말리 스와네폴(37)은 "당신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당신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자신의 농장에서 공격을 받은 한스 버그만은 그러나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수주일 전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쳐 그를 묶고 발에 총을 쐈다.

60대인 그는 "남아공에서는 모두 '농부는 부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며 총기를 소지하기보다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나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 농장을 떠나 내가 어디 갈 곳이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터너 여사는 남편을 죽인 범인들을 잡기는커녕 아직 진술조서도 받으러 오지 않는 경찰에 대해 "이 사람들에게 그날 밤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너 여사는 이어 "때론 내 남편을 죽인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길 바란다"라며 "언젠가 나는 농장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airtech-keny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12/27 02:4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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