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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동맹군에 맞선 예멘 후티 반군은 이란과 다른 시아 분파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치러지고 있는 예멘 내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인접 사우디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쉽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후티 반란은 20일로 발발 1천일을 맞은 가운데 수십 년래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와 기아 사태를 초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티 반군은 최근 사우디 수도 메카의 왕궁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는 등 사우디군의 압도적 화력에 맞서고 있다. 예멘 개입을 주도한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마치 중동판 베트남전의 늪에 걸려든 형국이다.

예멘 내전을 초래한 후티 반군은 누구인가?

후티 부족은 무슬림 시아파 내 소수 그룹인 '자이디파'로 '자이디야'(Zaydiyyah, 자이디)로 불린다. 같은 시아파지만 이란과 이라크, 기타 지역의 통상적인 시아파와는 교리와 신앙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는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가 후티 반군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브루킹스는 지적했다.

자이디야(자이디)는 예언자 모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의 증손자 자이드 빈 알리의 이름에서 비롯됐으며 자이드는 740년 첫 이슬람 왕조인 우마야드 제국을 상대로 봉기를 일으켰다 순교했다.

자이드는 당시 부패체제에 항거한 것으로 기술돼 있으며 수니와 시아파 측도 자이드가 '의로운 인물'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후티 반군은 최소한 명목상으로라도 부패와의 투쟁을 그들의 정치프로그램 가운데 핵심으로 삼고 있다고 브루킹스는 지적했다.

그들은 이란의 시아파처럼 아야톨라(고위성직자)를 따르지 않으며, 신앙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되는 '위장'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이디는 지난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이 알고 있는 이란판 시아파와는 아주 다른 분파인 것이다.

1918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 붕괴와 함께 예멘 북부 지역에 '무타와킬리테' 왕국이라는 자이드 왕조가 들어섰으며 통치자인 이맘은 제정(祭政)을 함께 이끌었다. 이어 합법적인 북예멘 정부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1962년 이집트의 지원을 받는 혁명적인 군인 일파가 무타와킬리테 왕정을 무너뜨리고 사나를 수도로 아랍민족주의정부를 세웠다.

소련의 지원과 함께 이집트는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수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 자이디 왕족들은 사우디와의 국경에 인접한 산속으로 피신했으며 사우디의 지원아래 항전에 나섰다. 이스라엘도 비밀리에 자이디를 지원했다.

일련의 군사쿠데타 속에 1978년 자이디 출신의 공화파인 알리 압둘라 살레 장군이 권좌에 올랐으며 이후 33년간 (북)예멘을 통치했다. 살레는 1990년 남북 예멘을 통합했으며 이후 관계 부침 속에 미국 등 서방과 알카에다 소탕전에 공조를 이뤄왔다.

후티 반군의 명칭은 1990년대 살레의 부패에 항거해 일어선 자이디 지도자 후세인 알 후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아랍권 최빈국 예멘의 국부를 횡령하는 살레 일가의 부패를 맹비난하는 한편 살레를 지원하는 미국과 사우디도 함께 비난하고 나섰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다른 아랍권처럼 후티도 급진화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래한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성공적으로 축출한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가 그들의 롤모델이 됐으며 멘토로 등장했다. 서로 교리는 달랐지만 양 세력은 가까워졌고 헤즈볼라는 영감과 경험을 후티 측에 제공했다.

헤즈볼라의 지원자인 이란도 자연스럽게 후티에 대한 2차 지원 세력으로 등장했다. 사우디는 이들에 공동의 적이 됐다.

2004년 반군 토벌에 나선 살레의 공격으로 지도자 알 후티가 사망했으며 사우디도 살레의 소탕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이 이들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내전이 지속하고 사우디는 수백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붓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은 전국적인 민중봉기로 살레가 물러나고 살레의 부통령이었던 남부 수니파 출신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새 지도자로 등장했다. 당연히 후티의 반발이 계속됐다.

후티는 하디에 맞서기 위해 2014년 실각한 자이디 출신 지도자 살레와 비밀리에 결탁했으며 아직 살레에 충성하고 있는 군과 함께 2015년 1월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살만 국왕(빈살만 왕세자의 부친)이 사우디 왕위에 오른 시기였다.

경쟁자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세력이 인접 예멘을 장악하는 것은 사우디에 악몽이었다. 이란은 사우디와 미국 등의 우려를 감안해 후티의 진격을 자제시키려 했으나 승리에 도취한 후티는 사나를 비롯한 예멘 전역을 장악하려 서둘렀다.

후티 측은 또 이 과정에서 살레가 다시 등을 돌리 기미를 보이자 그를 살해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때만 해도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후티 측과 비공식 정보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사우디가 후티와의 전쟁을 결심하면서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사우디를 지지하고 나섰다.

예멘 내전의 배경은 이처럼 매우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당초 사우디의 예상과 달리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도적 참상이 전해지면서 사우디의 과잉 대응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후티 반군의 미사일이 리야드나 아부다비에 떨어져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란에 대한 보복공격 요구로 사태가 급속히 확대할 위험성도 있다.

yj378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12/20 12:5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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