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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금지된 뜰'을 탐하다…전남 민간정원 3선 기행

송고시간2017-11-19 07:00

담양 죽화경, 보성 초암정원, 죽암 금세기농원…수십년 가꾼 개인 공간의 속살 엿봐

(고흥·담양·보성=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거인의 정원'은 자기만 아는 탐욕스런 거인이 티없는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다는 줄거리다.

거인은 금지된 정원에 몰래 놀러 온 아이들을 통해 사랑과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남의 정원은 묘한 구석이 있다.

평생 가꿔온 자신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금지된 정원이라면…

수십년 가꿔온,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공간을 남들을 위해 선뜻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라남도가 진행하는 '숲 속의 전남'과 '남도문화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인 남도 민간정원 사업으로 선정된 곳들이다.

초암정원의 빽빽한 대숲(성연재 기자)
초암정원의 빽빽한 대숲(성연재 기자)

올봄 담양 죽화경 등 2곳이 선정된 데 이어 보성 초암정원 등 이번 주 2곳이 더 등록됐다.

기자는 그 중 3곳을 다녀왔다.

미술을 주제로 한 여행이 있고 음악을 주제로 한 여행이 있듯 멋진 정원을 골라 다니는 여행은 어떨까? 궁금했다.

◇ 자연 그대로 개인 뜰 담양 '죽화경'

전남 담양군 봉산면의 죽화경은 획일적이고 거대한 정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화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은 놀랄 정도로 보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죽화경은 조경 디자이너인 유영길씨가 10여년 간 부인과 함께 정성을 다해 가꿔온 곳이다.

섬세한 여성적인 정원인 죽화경(성연재 기자)
섬세한 여성적인 정원인 죽화경(성연재 기자)

그는 순천정원박람회 기업 정원 부문 동상을 받기도 한 전문 조경 디자이너다.

정원 내부는 중장비가 투입될 수 없는 구조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정원박람회 등의 이벤트의 경우 수십 명의 인부와 중장비 여러 대가 투입돼 하룻밤 만에 없던 산과 연못이 생기기도 한다.

예당평야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라는 홍가시(성연재 기자)
예당평야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라는 홍가시(성연재 기자)

그러나 죽화경은 다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곳곳이 사람의 손길만 닿아 있다.

정원은 작은 숲이다. 그 숲길은 일자가 아니라 S자를 그리며 오솔길로 표현됐다.

곳곳에 유씨가 적은 글귀가 있어 잠시 앉아 쉬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

난대상록정원인 초암정원은 겨울에도 상록수들이 푸르름을 자랑한다(성연재 기자)
난대상록정원인 초암정원은 겨울에도 상록수들이 푸르름을 자랑한다(성연재 기자)

이 곳의 장점은 무엇보다 섬세하며 서정적이라는 데 있다.

모든 꽃이 다 스러진 초겨울이지만 죽화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다 저버린 공작 단풍의 붉은 잎이 파란 잔디 위에 떨어진 장면은 너무 포토제닉 하다.

연인들이 온다면 멋진 인생샷을 찍을 수 있겠다.

당시 전라남도지사를 지냈던 이낙연 국무총리도 남도 민간정원 발굴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근을 지나는 고속도로의 소음. 하지만 이 모든 아름다움은 그 소음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 너른 들판과 바다 한눈에…보성 '초암정원'

메타세콰이어와 국화가 매력적인 금세기정원(성연재기자)
메타세콰이어와 국화가 매력적인 금세기정원(성연재기자)

이번주 보성군 득량면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전라남도 민간정원 3호 기념식이 그 것이다.

우기종 전라남도 정무부지사를 비롯해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크게 알려지지도 않은 이곳에 무슨 이유가 있길래…

이곳은 광산김씨 문숙공파 김선봉 선생 9대 종손인 김재기(79)씨의 200여 년 된 종가고택 옆 야산에 만들어진 '난대 상록정원'이다.

그 누구도 득량면의 예당 벌판 한가운데 이런 아담하고 멋진 풍광을 지닌 정원이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이 정원은 드넓은 예당 벌판 한가운데 솟아난 별천지다.

한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하는 수종들로 가득하다.

뒷산 편백숲에서는 예당평야와 득량만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최대한 자연그대로를 살린 수변정원.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성연재 기자)
최대한 자연그대로를 살린 수변정원.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성연재 기자)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줄줄이 인사하듯 고개를 숙인 소나무 군락이다.

인사를 받고 뒤돌아 서 보라는 주인 김재기씨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소나무들이 꼿꼿하게 서 있다.

착시 현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인장의 설명이 재미있다.

정원 위쪽으로는 거대한 편백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다.

너무도 빽빽해서 한낮에 들어서도 빛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하다.

풀꽃 하나하나가 섬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담양 죽화경(성연재 기자)
풀꽃 하나하나가 섬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담양 죽화경(성연재 기자)

편백나무로 덮힌 오솔길을 오른쪽으로 돌면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대숲이 나타난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대나무 서걱거리는 소리가 마치 와호장룡 주인공이 나타날 만큼 생생하다.

◇ 바다 메워 만든 간척지 정원 '죽암 금세기농원'

금세기농원은 원래 경남 산청 출신의 김세기 선생이 조성한 고흥군 동강면의 간척지다.

바닷물밖에 없는 고흥군 동강면 바닷가를 흙으로 메워 유기농 쌀을 생산하는 옥토로 만들었다.

지금도 농장 한쪽에 마련된 기념관을 가보면 그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와 삽 한 자루가 전시돼 있다.

작은 오솔길을 걸어보는 여유를 느껴보자(성연재 기자)
작은 오솔길을 걸어보는 여유를 느껴보자(성연재 기자)

그 땅에 세워진 정원이 바로 '금세기 정원'이다.

선대 김세기 선생의 이름을 딴 정원으로, 한겨울인 지금도 갈색으로 변한 메타세쿼이아와 형형색색의 국화들로 가꿔져 있다.

수변정원과 은행나무길, 들녘과 축사, 육묘장이 어우러져 남도의 멋과 낭만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부지 내 곳곳에 마련된 수변 정원들이다.

조용한 정원을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글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성연재 기자)
조용한 정원을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글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성연재 기자)

연못은 최대한 인공적인 면을 줄이고 자연 생태계가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전라남도는 '숲 속의 전남'이라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남도 특유의 민간 정원 문화를 개발하고 시·군별로 1곳 이상 다양한 정원을 계속 조성하고 발굴할 예정이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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