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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집권2기 지도부…모호한 계파성에 능력·충성심 중시(종합)

송고시간2017-10-25 18:06

모두 60대에 하방·기층생활 경력…학연 일관성 없고 시진핑 지연 엿보여

시진핑 집권2기 7인체제 출범…상무위원 5명 선임 (PG)
시진핑 집권2기 7인체제 출범…상무위원 5명 선임 (PG)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 진용[AFP=연합뉴스]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 진용[AFP=연합뉴스]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시진핑(習近平·64) 집권 2기의 중국 최고지도부는 다소 모호한 계파성에 출중한 업무능력, 그리고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과 과거 연줄을 가진 인물들로 짜였다.

25일 확인된 중국 공산당의 19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은 시진핑 주석 자신을 포함해 리잔수(栗戰書·67) 중앙판공청 주임, 왕후닝(王호<삼수변+扈>寧·61)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오러지(趙樂際·60) 중앙조직부장 등 시자쥔(習家軍)이 4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그 다음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권력기반인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가 리커창(李克强·62) 총리와 왕양(汪洋·62) 부총리 2명이다. 이어 장쩌민(江澤民) 계열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한정(韓正·63) 상하이시 서기가 있다.

결국 시 주석도 이번 집권 2기 진용을 짜는 데 있어 전임자들로 형성된 계파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고 집단지도체제의 큰 틀에 따라 계파별로 안배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속 계파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게 중평이다. 한 소식통은 "대부분이 시 주석과 알게 모르게 연줄로 이어진 인물들로 이들 전부를 시진핑 계열로 구분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특히 차기 상무위원의 소속 계파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왕양도 1980년대 3년간의 공청단 활동 경력으로 인해 공청단파로 분류되지만 이미 충칭, 광둥성 서기와 부총리를 지내며 경제외교, 빈곤퇴치 분야에서 능력을 보이면서 시진핑 충성파로 돌아섰다.

한정 역시 장쩌민 계열과의 친분으로 상하이방으로 묶여있지만 오히려 시진핑 서기 시절의 극진한 보좌와 업무능력으로 인해 시진핑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 정 역시 공청단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왕후닝도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정권까지 3대에 걸친 '책사'다. 지방 행정경험이 없어 상무위원 발탁 가능성이 낮았지만 계파 색채가 두드러지 않아 각 계파의 반대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잔수도 시진핑과 오랜 인연이 있던 최측근으로 분류되지만 구이저우에서의 빈곤퇴치 사업 및 경제성장 실적과 중앙판공청 주임 시절 보여준 충성심으로 상무위원에 발탁됐다.

시 주석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았던 자오러지는 과거 시 주석 일가와의 오랜 인연과 함께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묘를 성역화한 경력과 중앙조직부장 시절 시 주석 친위세력을 대대적으로 전면에 포진시킨 공로를 인정받는다.

계파 색채가 확실하게 두드러지는 후춘화, 천민얼은 후계자는 커녕 상무위원 진입도 못한 점이 두드러진다. 후춘화에 대해서는 네이멍구 서기 시절 성장률 높이려는 무리한 정책으로 유령도시를 양산한 실책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 자신도 과거 장쩌민의 지원을 받은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으로 분류됐지만 집권 이후에는 이런 계파 색채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반부패 투쟁 과정에서 장쩌민 계열 및 태자당 그룹과는 대척점에 서기도 했다.

[그래픽] 시진핑 집권2기 7인체제 출범
[그래픽] 시진핑 집권2기 7인체제 출범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공산당의 초심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는 시 주석은 곱게 자란 태자당 이미지를 꺼리며 오히려 민중 속에서 일한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차기 상무위원 대부분 청소년기에 지식청년의 상산하향으로 하방됐거나 문화대혁명 시기 말단에서 생산근로직에 종사했던 기억이 있다.

시 주석이 1969∼1975년 산시(陝西)성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촌에서, 리커창은 1974∼1976년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에서, 자오러지는 1974∼1975년 칭하이(靑海)성 구이더(貴德)현에서 하방 생활을 했다.

왕양은 1972년 안후이성 쑤(宿)현의 식품공장 직원으로, 한 정은 1975년부터 창고관리원으로, 자오러지는 1972년 허베이성 스자좡(石家莊)지구 상업국 판공실 간사로, 왕후닝은 1977년 상하이시 출판국 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울러 이들은 모두 60대의 나이로 차기 후계자로 지명될만한 연령 요격을 가진 인사가 없다. 후계자의 격대지정(隔代指定) 원칙을 파기하고 시진핑 집권 연장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2022년 20차 당대회 때는 공산당 내부의 7상8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불문율이나 2연임 불가 원칙에 따라 시진핑, 리커창을 포함해 상당수가 퇴진해야 한다.

2022년에 자오러지가 65세, 왕후닝, 왕양이 67세를 맞아 연임의 기회를 갖지만 시 주석의 장기집권 여하에 따라 다른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시 주석이 이들을 선발하는데 있어 학연이나 학벌도 크게 따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과 같은 칭화(淸華)대 출신은 한명도 없고 리커창 총리(법학과)와 같은 베이징대 출신이 자오러지(철학과)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왕후닝이 상하이 푸단(復旦)대 국제정치학과 출신이고 왕 양은 중앙당교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나머지 리잔수는 허베이사범대 야간대학에서 정치교육과를, 한정은 상하이 화둥사범대 야간대학의 정치교육과를 마쳤다.

학력 간판보다는 실력과 능력을 더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들의 출신지 가운데 시 주석의 고향인 산시(陝西)성이나 시 주석이 거친 허베이(河北)성, 저장성, 상하이 등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을 중시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자신과 같이 경험을 하면서 생각을 공유한 사람을 중용하는 셈이다.

자오러지(2007∼2012년 산시성 재직), 리잔수(1983∼1985 허베이성 우지현, 1998∼2002년 산시성 재직), 한정(1975∼2017년 상하이 거주)이 시 주석과 지역적 인연이 겹치는 인물들이다. 자오러지는 시 주석 가문과도 인연이 닿는다.

한 정과 왕후닝은 고향은 저장, 산둥이지만 모두 상하이 출신으로 기록될 만하고 리커창, 왕양은 후진타오와 같은 안후이 출신이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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