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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 "폭력의 대물림 이야기하고 싶었다"

송고시간2017-10-24 07:40

소설집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출간

김숨 [문학동네 제공ⓒ김흥구]
김숨 [문학동네 제공ⓒ김흥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이듬해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한 김숨(43)은 요즘 문단에서 가장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는 작가 중 하나다. 2005년 첫 소설집 '투견' 이후 12년 동안 장편 9편, 소설집 4권을 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도 뒤따랐다.

새 소설집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이상 문학동네)를 최근 동시에 묶어 낸 김숨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쓰고 내려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차를 두고 발표한 작품들이라지만, 주제를 향한 작품들의 응집력이 소설 노동자로서 성실함을 입증한다. '당신의 신'에는 이혼을 소재로 삼은 중·단편 3편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는 동물이 등장하는 단편 6편이 실렸다.

'당신의 신'에서 맨 앞에 실린 '이혼'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민정의 시선으로 각종 서류와 통계 수치에 잡히지 않는 여성의 상처를 해부한다. 협의이혼을 위해 남편과 함께 찾은 법원은 갈라서기 위해 어색하게 만난 대기자들로 북적인다. 민정은 그곳에서 직장 선배였던 영미와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에 남편과 가족과 사회가 가한 폭력을 복기한다.

명문대 출신으로 민정이 일한 복지재단의 사수였던 영미는 이혼하고 몇 달 뒤 회사 직원과 내연 관계라는 추문에 시달렸다. 대형교회 원로 장로로 기독교 교리를 신봉하는 재단 이사장은 노발대발해 영미를 해고한다. 해외근무를 자원한 추문의 상대는 3년 뒤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더라'며 계면쩍게 해명하고 복지관 관장으로 승진한다.

후유증은 여성의 몫이었다. 퇴사한 영미는 이혼 경력 탓에 취업하지 못하고 감자탕집에서 서빙을 하다가 학습지 교사로 일한다. 민정의 어머니 역시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해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 민정은 부모를 이혼시키려 하지만 어머니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의 속박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민정이 유산 이후 유방암 진단을 받고 괴로워할 때 남편은 아내의 고통을 외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하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한다는 남편이었다. 이혼이 자신의 영혼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남편에게 민정은 말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64쪽)

김숨 [문학동네 제공 ⓒ김흥구]
김숨 [문학동네 제공 ⓒ김흥구]

피붙이보다 가깝다는 부부는 어떻게 상대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되나. 영혼의 구원자 따위의 과장된 수식을 걷어내면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존엄한 존재잖아요. 부부는 같은 모습으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에요. 상대에 대한 정신적, 물리적 폭력은 자기 성찰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상대를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서 오는 것 같아요."

민정은 고등학생 때 이미 이혼하는 꿈을 꿨다. 상대는 아버지였다. 필명으로 등단하며, 아버지가 준 그 이름을 버리기 위해 등단을 원했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는 "대물림되는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폭력의 대물림은 맨 뒤에 실린 '새의 장례식'에서 남성 화자의 입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혼한 아내의 현재 남편과 마주한 화자는 연애 시절부터 행사한 폭력의 근원을 떠올린다. 화자에게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개처럼 끌고 다니는 장면이었다.

폭력이라는 열쇳말을 염두에 둔다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 실린 단편들은 동물을 비롯한 자연생태계를 자신들의 세계에 욱여넣는 인간중심주의 대한 반성의 결과로 읽힌다. 보다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제도와 법칙을 통해 인간이 동물에 가하는 폭력은 대물림된다.

'쥐의 탄생'은 아파트에 나타난 쥐를 제거하려고 부른 '쥐잡기 전문가'들의 소동을 그린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한 마리당 10만원의 수당을 받기 위해 망치·쇠막대·쇠꼬챙이 같은 도구들을 가지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만 쥐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다. 화자의 눈엔 어느새 쥐가 아닌 이들이 불청객으로 보인다. 쥐가 아닌 쥐잡기 전문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우화다.

'당신의 신'에서 여성들이 이혼이라는 극단적 과정을 감수하며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쓴다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의 동물들은 인간을 비웃듯 포획의 그물망에서 벗어난다. 해부학 실습을 위해 염소를 기다리는 생물학과 학생들의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담은 표제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서 역시 염소는 끝까지 해부대 위에 오르지 않는다.

'벌'의 화자는 유부남과 불륜을 맺고 나중엔 함께 벌을 키우는 그의 아들과 관계를 가진다. 화자는 인간이 산을 소유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 의심하며 철저히 인간 아닌 벌 집단의 법칙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지만, 인간이 죄의식 없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김숨은 "폭력은 어느 작가에게나 보편적 주제다. 폭력성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소설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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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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