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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300년전 변기에 배수시설…화장실 고고학의 새 장이 열렸다

경주서 수세식 화장실 유적…"기생충 나오면 신라인 식생활 규명될 수도"
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신라시대 화장실 문화(경주=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2017.9.26
psykims@yna.co.kr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보통 사각형 전돌을 깔아 만든 시설에는 맑은 물을 흘려보냅니다. 그런데 이 화장실 한쪽은 바닥을 전돌로 채웠습니다. 그만큼 세련된 화장실 아니었을까요."

이른바 '화장실 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 유적이 경주 동궁(東宮)에서 발견됐다. 8세기 중엽 신라왕실이 조성한 화장실 건물지와 석조변기, 오물을 흘려보낸 배수시설이 출토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6일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북동쪽 지역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간담회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이 단연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 경주 불국사와 익산 왕궁리에서 고대 화장실 유적이 나온 적은 있지만, 화장실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일련의 유적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동궁의 수세식 화장실 유적은 그간 '화장실 고고학의 총아'로 불린 익산 왕궁리의 백제 공동화장실 유적과 비교하면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나온 수세식 화장실은 2칸 건물로 변기는 한쪽에만 설치됐다. 12∼13㎝ 길이의 구멍이 뚫린 타원형 석조변기를 두고, 좌우에는 발판으로 쓸 커다란 직사각형 판석을 놓았다. 판석에 양발을 딛고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변기를 이용한 뒤에는 물을 부어 오물이 기울어진 암거(暗渠·물을 빼낼 수 있도록 밑으로 낸 도랑)를 거쳐 배수시설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됐다. 타원형 변기에서 6∼7m 떨어진 지점은 40㎝ 정도 낮아 물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원리상으로는 현대 화장실과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화장실 유적은 신라인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배설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며 "문화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
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경주=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변기를 두지 않았던 방의 쓰임새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이 방에는 기다란 돌덩어리 두 개가 약간 떨어진 채 나란히 배치돼 있고, 바닥에는 전돌이 깔렸다. 손을 씻는 전실(前室)일 수도 있고, 남성이 소변을 보는 장소였을 가능성도 있다.

판석이 재활용된 과정도 미스터리다. 이 판석 또한 아귀를 맞추면 가운데에 타원형 구멍이 생기는 변기였다. 그런데 타원형 변기가 만들어지면서 해체된 뒤 발판이 된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화장실 유적의 일부가 동해남부선 철길 때문에 조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장실 유적에서는 보통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규명할 인분이 발견된다. 예컨대 익산 왕궁리에서 얻은 인분의 기생충을 분석한 결과, 채소를 먹을 때 나오는 회충과 편충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동궁의 화장실 유적은 배수시설 탓에 인분이 나오지 않았다.

이 소장은 "철길 쪽을 추가로 발굴하면 오수를 모아둔 저수조가 나올 수 있다"며 "저수조 주변에서 기생충이 나오면 신라인이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9/26 16:0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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