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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가 기행이라고?…"대안적 역사 쓰기로서의 예술"

퍼포먼스 예술 50년…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역사를 몸으로 쓰다' 展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가 멜라티 수료다모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작업 '빛의 뒤에서'를 하고 있다. 2017.9.21. airan@yna.co.kr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가 멜라티 수료다모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작업 '빛의 뒤에서'를 하고 있다. 2017.9.21. airan@yna.co.kr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둠 속에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이에 얼굴을 파묻은 여성은 한동안 미동도 않는다. 찬찬히 고개를 든 여성의 얼굴은 피 칠갑이 돼 있다.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펼쳐진 한 편의 연극과도 같은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작가 멜라티 수료다모의 퍼포먼스 '빛의 뒤에서'다.

수십 명의 취재진과 각국 작가들이 유리방 안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숨죽인 채 지켜봤다. 방을 가득 채운 피의 흔적은 상실과 고통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의 발치에 수북이 쌓인 붉은 종이는 고통스러운 집단 기억을 상기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너른 공간이 무수한 '몸짓'으로 가득 찼다.

인간의 몸과 몸짓을 예술 매체로서 들여다보고 어떠한 사회·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기획전 '역사를 몸으로 쓰다'가 22일 개막하기 때문이다.

1967년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한국 최초의 퍼포먼스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 벌어진 지 만 5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시.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내외 38개 팀이 참여한 전시는 역사와 일상, 공동체라는 3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구성됐다.

가장 눈에 끌리는 것은 역사를 '재상연'하고자 했던 퍼포먼스 작업을 조명하는 1부다.

1974년 성능경 작가는 전시장 벽면에 신문을 게재하고 기사를 면도날로 오려냈다. "유일신 적인 단일 회로를 요구하던" 유신 정권의 사전 검열을 비판하는 일종의 '사후 검열' 퍼포먼스였다. "그때만 해도 신문을 오리면서 달달 손이 떨렸어요. 그런데 누가 뒤를 툭툭 치더니 신분증을 하나 쑥 내밀어서 너무 놀랐죠. 신문사 기자라며 인터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성 작가는 정보기관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도망부터 쳤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성 작가가 신문을 오리던 시기, 일본에서는 제로 지겐, 하이레드센터 등의 퍼포먼스 그룹이 한창 활동 중이었다. 제로 지겐은 길거리뿐 아니라 목욕탕, 전차, 신사 묘지, 노동절 기념회장 곳곳에서 신체를 노출하거나 장례식 등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제로 지겐의 가토 요시히로는 "당시 미술계에서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일본 내부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성능경 작가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과거 작업들을 설명하고 있다. 2017.9.21. airan@yna.co.kr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성능경 작가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과거 작업들을 설명하고 있다. 2017.9.21. airan@yna.co.kr

텐안먼 광장 바닥에 누워 숨을 쉬고(쑹둥), 중국 고대 유물을 깨부수는(아이웨이웨이) 행위도 거대한 제도와 권력 앞에 선 예술가의 저항하는 몸짓이다.

아이웨이웨이 작품이 국내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기원전 20년 한나라 유물로 추정되는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오래된 것을 파괴해야만 새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한다.

요즘 작품마다 주목받는 박찬경 작가도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집단 기억과 정치적 이미지에 균열을 가하는 신작 '소년병'을 내놓았다.

인민 군복을 입은 한 소년이 숲에서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는 등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모습이 35mm 사진 이미지에 담겼다.

그는 "일상적인, 위험하지 않은 북한 이미지야말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 위험해 보일 수도 있고,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2부는 평범한 일상의 몸짓을 예술의 문맥으로 끌어온 작업들을 선보이며, 3부에서는 1990년대 후반 우리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들을 몸짓으로 표현한 작업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술가들의 몸짓은 언어가 기록하지 못한 역사, 언어가 감당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와 부재의 역사를 써내러 간다"면서 "그 몸짓이 일종의 대안적이고 저항적인 역사 쓰기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퍼포먼스 예술이라고 하면 '기행'이라는 두 글자부터 떠올릴 사람들이 찾아보면 좋을 전시다. 넓은 전시장에서 길을 잃어도 흥미로운 작품들을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2018년 1월 21일까지. 문의 ☎ 02-2188-6040.

air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9/21 16: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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