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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감성의 촉수' 뒤흔드는 석모도 바람길

송고시간2017-10-09 08:01

(강화=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화(江華)는 육지 같은 섬이다. 강을 끼고 있는 좋은 고을이라는 뜻을 품은 강화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일 년 열두 달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산과 바다, 갯벌을 두루 품고 있고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유적과 유물이 널려 있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란 뜻을 지닌 강화 나들길은 화남 고재형(1846∼1916)이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아 강화가 품고 길러 낸 자연과 땅 위의 모든 것을 연결한 길이다.

강화도 선비 고재형은 1906년 강화도 곳곳을 누비며 각 마을을 주제로 256편의 한시를 짓고, 마을 유래와 풍광, 인물, 생활상을 기록한 '심도기행'(沁都紀行)을 펴냈다.

제방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칠면초가 갯벌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사진/전수영 기자]

제방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칠면초가 갯벌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사진/전수영 기자]

2013년 말 완공된 강화 나들길은 심도역사 문화길(18㎞, 6시간), 호국돈대길(17㎞, 5시간 50분), 고려왕릉 가는 길(16.2㎞, 5시간 30분), 해가 지는 마을 길(11.5㎞, 3시간 30분), 고비고개길(20.2㎞, 6시간 40분), 화남생가 가는 길(18.8㎞, 6시간), 낙조 보러 가는 길(20.8㎞, 6시간 40분)이 있다.

또 철새 보러 가는 길(17.2㎞, 5시간 40분), 교동도 다을새 길(16㎞, 5시간), 머르메 가는 길(17.2㎞, 5시간 40분), 석모도 바람길(16㎞, 5시간), 주문도 길(11.3㎞, 3시간), 볼음도 길(13.6㎞, 3시간 30분), 강화도령 첫사랑 길(11.7㎞, 3시간 30분), 고려궁 성곽길(11㎞, 4시간), 서해 황금 들녘길(13.5㎞, 4시간), 고인돌 탐방길(12㎞, 3시간 40분),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15㎞, 4시간 30분), 석모도 상주 해안길(10㎞, 3시간 30분), 갯벌 보러 가는 길(23.5㎞, 7시간 30분)이 더해진다.

강화 나들길은 20개 코스에 총 310.5㎞로 제각각 품은 풍경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걷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겁다.

제11코스인 석모도 바람길은 석포리 선착장에서 보문사 입구까지 16㎞에 달하며 소요시간은 5시간이다. 대부분 제방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일명 '보문사 가는 길'로도 불린다.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갯벌, 해변 그리고 자그마한 숲을 끼고 도는 코스다.

사단법인 강화 나들길의 강복희 상임이사는 "석모도의 바람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흩뿌리는 바람으로, 온몸에 살짝 얹히는 바람을 품고 내딛는 발걸음은 마치 솜사탕처럼 가벼워서 걷는 재미에 시나브로 녹아든다"며 "석모도 바람길은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이라고 말한다.

석모도(席毛島)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三山面)에 속한다. 총면적 4만 5천622㎢에 이르는 석모도에는 1천200여 가구, 2천300여 명이 거주한다. 석모도 지명은 조선 후기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전국 읍지 '여지도서'에서 '돌투성이인 산자락의 모퉁이로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돌모루'라는 뜻의 '석모로'란 이름이 붙은 뒤 자연스럽게 석모도가 됐다.

해명산(327m), 상봉산(316m), 상주산(264m) 등의 봉우리가 한자의 산(山)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삼산' 면이다.

석모도 바람길 출발지인 석포리 선착장의 강화 나들길 안내판

석모도 바람길 출발지인 석포리 선착장의 강화 나들길 안내판

◇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길

석모도 바람길은 석포리 선착장에서 시작한다. 지난 6월 말 강화 본섬과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카페리에 몸을 싣고 1.2㎞의 바닷길을 건너야 했다. 뭍과 연결돼 막배 끊기는 걱정 없이 언제든 쉽게 오갈 수 있는 '섬 아닌 섬'이 됐지만 10여 분 동안의 뱃길에서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와 '밀고 당기기'를 하던 풍경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음식점, 선착장 개찰구, 대합실 건물, 버스정류장 표시판 등은 예전 그대로 모습이지만 어딘가 파장을 앞둔 오일장처럼 쓸쓸한 분위기다.

선착장에서 제방길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드넓은 갯벌이, 오른쪽으로 해명산과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오래전 이 일대는 갯벌이었는데 고려 때부터 근래까지 간척사업을 벌여 여러 섬이 합쳐졌고, 섬치고는 꽤 넓은 농토를 이루게 됐다.

물 빠진 갯벌 위로는 칠게가 수없이 기어 다니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농게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바닷가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칠면초가 갯벌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한해살이풀인 칠면초는 연둣빛, 회색, 녹색 등 일곱 번 빛깔을 달리하는데 가을 무렵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으로 변한다.

11월이면 하얗게 말라 죽는다. 가을이 되면 산과 들뿐만 아니라 바다도 붉은빛으로 곱게 물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문재라 불리는 나마자기는 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밀물 때도 바닷물에 잠기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염생식물로, 함민복 시인은 '조금밭에 뻘물 뒤집어쓰지 않아/ 빛깔 고운 나마자기야'라고 묘사했다.

갯벌과 염생식물에 취하다 보면 바닷물과 바람이 만든 자연 조각품인 해안 바위에 닿는다. 50m의 해안 바윗길을 걷다 다시 민들레와 비슷한 사대풀이 노란빛을 뽐내는 둑길을 걷는다. 보문 선착장을 지나 제방길을 걷다 보면 '삼량(三良)염전 역사와 유래' 안내판과 마주친다.

한때 천일염을 생산했던 염전은 간데없고 지금은 퉁퉁마디, 칠면초 등 염생식물만 자라고 있다. 1957년 매음리 연안 일대를 매립해 240㏊의 염전과 농장을 개척하였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물에 잘 녹고 짠맛도 강하지 않아 최상급소금으로 평가받았다. 인건비와 생산비에 비해 소금값이 제자리걸음을 한 탓으로 2006년부터 생산을 중단했고, 현재 골프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섬 내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변

섬 내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변

◇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 '민머루' 해변

삼량염전을 지나면 숭어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어류정항이다. 게구멍이 숭숭 뚫린 개펄에 올라앉은 어선과 개펄 사이로 난 수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어류정항을 둘러본 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바람길로 발길을 옮기면 민머루 해변까지 이어지는 산길이다.

1.1㎞ 숲길에서 꽃을 뒤집으면 보부상들이 쓰던 모자처럼 생긴 패랭이꽃이 눈에 밟힌다. 시인 류시화는 '패랭이꽃'이라는 시에서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라는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이라고 노래했듯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소박한 꽃이다.

산길에서 내려서면 섬 내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변이다. 민머루는 삼량염전에서 해수욕장으로 가는 고갯길에 민 씨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머루는 마루(고개)가 변해서 된 말이다. 백사장의 길이가 1㎞, 폭은 50m 정도이며, 물이 빠지면 약 1㎞ 정도의 갯벌이 펼쳐진다.

노을뿐만 아니라 주변 경치 또한 빼어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 사진작가들의 촬영 장소로도 널리 알려졌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김병문 선생을 찾아다니던 중 갯벌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많은 사람이 몸에 개흙을 바르고 해수욕을 즐긴다.

모래 해변을 가로질러 산길을 100여m 오르면 횟집 '바다의 마음'이 위치한 야트막한 언덕이다. 이곳에 서면 발아래로 굽어보는 민머루 해변이 제법 넓고 시원하며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 말도 등 바다에 흩뿌려진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산굽이를 돌면 산마루가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장구너머 포구가 나타난다. 장구너머 포구 입구의 양주농헙 강화교육원을 끼고 산길로 들어서 조금 가다 보면 노루목 펜션이 나오고, 이어 어류정수문 입구와 '종점 3.9㎞'라는 이정표와 만난다.

개망초와 망초가 함께 핀 제방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낚시터와 새우양식장이, 저 멀리 보문사의 눈썹바위가 보인다. 가끔 멈춰 서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간간이 내리는 보슬비에도 아랑곳없이 바다 풍광과 바닷바람에 피로가 녹아내린다.

뻐근해진 다리를 재촉해 걸으면 주문도와 볼음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 이른다. 포토존 한쪽 편에는 제12코스 주문도 길과 제13코스 볼음도 길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제방길을 내려서서 보문사 쪽으로 600m 걸으면 제11코스 종점인 보문사 주차장이다.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

◇ 서해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욕

체력에 따라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되돌아가거나 '기도발' 좋다고 소문난 보문사(普門寺)를 둘러볼 수 있다.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면 진신사리 봉안탑과 오백나한상, 와불상을 모신 와불전, 거대한 화강암 석실이 탐방객을 맞는다.

마애석불좌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41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1928년 눈썹바위에 조각된 마애석불좌상은 높이 9.2m, 폭 3.3m로, 마애불의 시선과 방향을 같이하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서해와 크고 작은 섬들이 두 눈에 담긴다. 특히 사위를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는 천상의 비경이다.

강화군이 조성한 보문사 입구의 미네랄 온천은 실내탕, 노천탕(15개), 황토방, 옥상 전망대, 족욕탕 등을 갖추고 있다. 460m 지하암반 틈에 고여 있던 바닷물을 뽑아 올린 51도의 천연 온천수를 그대로 식혀서 쓴다. 노천탕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어 해풍과 햇빛으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야간 경관과 함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노천탕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노천탕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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