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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모사드, 아이히만 잡느라 멩겔레 놓쳐"

멩겔레 소재 파악하고도 체포 실패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이스라엘이 2차 대전 후 해외로 도피한 나치 전범들 가운데 체포해 법의 심판대에 세운 최대 거물은 루돌프 아이히만이다.

유대인 집단 학살을 위한 나치의 이른바 '최종해결'을 입안한 인물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핵심 전범인 일명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요제프 멩겔레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끝내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나치 사냥 작전에서 최대 오점인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지난 1960년대 멩겔레의 소재를 파악, 체포하려 했으나 공교롭게 아이히만 체포 작전과 겹쳐 시기를 놓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멩겔레는 나치 친위대장교이자 의사로 2차 대전 당시 악명 높은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담당자였다. 그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강제노역과 가스실 처형 및 생체실험 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을 맡았으며 수감자들을 이용해 유전학 연구를 지속했다. 끔찍한 생체실험으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멩겔레는 러시아군이 진주하기 전 수용소를 탈출해 은신하다 1949년 나치 동조자들의 도움으로 남미로 도피했다.

6일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구 모사드는 최근 멩겔레를 체포하기 위해 모사드가 벌인 활동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파일을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셈 대학살(홀로코스트)추모재단에 기증했다.

이들 파일을 통해 아이히만을 체포하기 위해 당시 남미로 파견됐던 모사드 요원들이 당시 멩겔레의 행적도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남미 현지 공작 책임자였던 라피 에이탄은 이세르 하렐 모사드국장에게 두 사람을 한꺼번에 체포하는 데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90세로 이스라엘 내 가장 유명한 첩보원 가운데 한 사람인 에이탄은 이스라엘 공영방송에 당시 자신은 '한 번에 한 사람씩 처리할 것'을 주장, 하렐 국장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아이히만 체포, 납치 작전이 성사 단계에 있던 상황에서 멩겔레까지 한꺼번에 체포하려다 자칫 아이히만 체포까지 위태롭게 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요제프 멩겔레 (위키피디아)
요제프 멩겔레 (위키피디아)

멩겔레도 모사드가 추적해온 핵심 나치 전범이었지만 당시 모사드로서는 아이히만 체포가 최우선 작전이었으며 덕분에 멩겔레는 체포를 면한 셈이다.

1960년 5월 모사드 요원들이 아이히만을 붙잡아 그를 이스라엘행 엘알 여객기에 실려 보낸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파트로 멩겔레를 잡으러 갔으나 그는 이미 아이히만 납치를 알고 도주한 후였다.

요원들은 아파트에서 1주일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그사이 아이히만 체포 사실이 공표되면서 멩겔레는 잠적한 것으로 에이탄은 밝혔다.

파일에 따르면 모사드는 1962년 브라질에 도피 중이던 멩겔레의 행적을 다시 파악하는 데 성공했으나 여러 정치적 이유로 납치 작전은 성사되지 못했고 멩겔레는 다시 잠적했다.

그사이 멩겔레는 독일의 가족을 방문하는가 하면 아들인 롤프와도 연락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사드는 롤프에 여성 요원을 접근시켜 멩겔레의 소재를 알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멩겔레는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사이 인접 브라질로 도피했으며 1979년 상파울루 해안에서 수영 중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가 저지른 엄청난 만행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종말을 맞은 것이다.

yj378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9/07 16:2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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