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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한지 가장자리에 남은 수행의 흔적…김민정 개인전

'종이, 먹, 그을음' 展 현대화랑서 9월 1일 개막


'종이, 먹, 그을음' 展 현대화랑서 9월 1일 개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한지로 작업하는 김민정 작가가 3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자신의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화랑에서는 1일부터 개인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가 열린다. 2017.8.30 airan@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한지로 작업하는 김민정 작가가 3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자신의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화랑에서는 1일부터 개인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가 열린다. 2017.8.30 airan@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김민정 작가는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장난감이 흔치 않던 시절, 그는 아버지 인쇄소에 쌓여 있던 종이 자투리를 갖고 놀았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뒤에는 당시 남도의 많은 가정이 그러했듯, 서예를 배웠다.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보고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 그런 것 같아요. 금줄로 작업하는 인도의 유명 작가가 있는데, 그 사람도 아버지가 금속공예를 하는 분이었대요. 알게 모르게 어릴 적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3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만난 작가는 2m 크기의 대작 '더 스트리트'(The Street·2007)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더 스트리트'는 불에 한 장 한 장 그을린 한지 조각 수천 개를 이어붙여 만들었다. "유난히 속이 시끄러웠던" 어느 날, 서재에서 책들이 마구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났다. 이를 형상화한 손가락 길이의 한지 조각 하나가 책 한 권인 셈이다.

Phasing, 한지에 혼합재료, 96x76cm, 2017
Phasing, 한지에 혼합재료, 96x76cm, 2017 [현대화랑 제공=연합뉴스]

현대화랑에서 9월 1일 개막하는 개인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는 30여 년째 한지와 먹, 불을 재료로 작업하는 작가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더 스트리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30여 점의 회화 대부분이 최근작이다.

작가에게 재료는 피부나 다름없다고 말한 그는 한지를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을 때도 한지 뭉치를 품에 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요즘도 그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의 작업실 바닥에 한지를 깔아놓은 뒤 바라보는 것만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때도 있다.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페이징'(Phasing) 시리즈는 종이, 먹, 그을음으로 대변되는 작가의 모든 것이 응집된 결정체다. 작가는 "나도 이제 작가가 됐다는 기쁨을 안겨줬던 작업"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여행 떠나기 직전 짐을 싸느라 정신없을 때 작업을 해요.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한 작품 더 하고 죽자는 마음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웃음)"

먼저, 먹을 적당히 머금은 붓을 한지 위에 휘두른다. 태권도 2단인 작가는 그 모습을 힘차게 재연하면서 "이건 드리핑(dripping)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라, 여행에서 돌아와 먹이 뿜어낸 형태를 보면 "카악 날이 서 있다"고 했다.

김민정, Phasing, 한지에 혼합재료, 143x206cm, 2017
김민정, Phasing, 한지에 혼합재료, 143x206cm, 2017 [현대화랑 제공=연합뉴스]

먹이 떨어진 위에 얇은 한지를 덧대어 그 윤곽을 그리고, 윤곽을 향으로 그을려 구멍을 내는 것이 두 번째 작업이다. 채움과 비움의 이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자연스레 양과 음의 개념을 떠올린다. 작가는 원래의 한지와 구멍 난 한지를 살짝 어긋나게 겹친 다음 배접하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는 수백 수천 장 한지를 초나 향에 그을리는 것을 반복하는 일을 일종의 명상으로 여긴다고 했다. "종이를 태울 때 잡생각을 하면 불이 확 붙어 종이가 타기 쉬워요. 그래서 아예 잡념이 없죠. 불 자체도 바라보고 있으면 좋고, 저 자신이 '공순이'가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1980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해 1991년 이탈리아로 홀연히 떠나기 전까지 고단했던 개인사가 읽히는 듯했다.

이를 두고 엔리코 룽기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장은 "김민정의 연작은 종이를 다루고 먹과 불을 활용해 만든 조합과 연속을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제한 없는 자유를 안겨준다"고 평했다.

"종이 선택부터 이를 끈기 있게 콜라주하고 세심하게 잘라내는 것, 종이가 타들어 가는 것을 통제하는 것, 체계적이면서 열린 형태로 구성하는 것까지 모든 것은 집중과 사색을 증언하며 적극적인 정신과 신체의 힘으로 볼 수 있다."

수행하듯 반복하는 작업을 통해 빚어낸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색화라는 단어가 자연히 떠오른다. 영국박물관에서는 그의 작품 3점을 최근 사들였다. 내년 초 개인전을 여는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도 그에게 '한국에 여성 단색화 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을 해왔다고 한다.

작가는 "제 작업의 생태는 반복을 통해 리뉴얼되는 것"이라면서도 "제가 어떤 콘텍스트로 분류되는지는 제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문의 ☎ 02-2287-3591.

air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30 18:0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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