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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또 터질 것…물량팀, 죽지 않으면 산재 신청 안 해"

송고시간2017-08-24 16:49

노동자들 하소연 "블랙리스트·해고 우려…조선업 작업현장은 시한폭탄"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현재 조선업 작업현장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폭발 참변이 발생한 STX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같은 일이 언제 또 터질지 알 수 없어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 되풀이될 겁니다."

STX조선해양 [연합뉴스 자료사진]
STX조선해양 [연합뉴스 자료사진]

7년째 물량팀에서 선박 파이프의 덮개를 씌우는 일을 하고 있는 30대 A씨는 조선업 선박 건조작업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푸념했다.

A씨의 일도 다른 물량팀 작업처럼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압력을 통해 파이프로 보내는 기름이나 가스가 누출되거나 폭발할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다행히 다친 적은 아직 없으나 주변 동료의 경우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숨지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는 "높은 곳에 올라가 일을 하던 중 발판을 고정하지 않아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며 "오늘 처리해야 할 일에 치이느라 안전 관련 규정은 뒷전이 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STX조선 사고도 보면 송기 마스크 대신 방독마스크를 작업자들이 썼다고 문제시하는데 현장에서 지금껏 송기 마스크가 지급된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형식뿐인 안전교육,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장비 등은 조선업 작업현장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산업재해 적용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원청은 불이익이 두려워 산재 적용 대신 적당한 수준의 합의금으로 무마하는 경우도 많다.

나이 든 작업자들은 산재신청을 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재고용 걱정으로 하지 않는다.

A씨는 "그래도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유입되고 물량팀에 대한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나마 나아지는 추세"라며 "죽지 않으면 산재신청을 할 수 없다는 말도 그리 틀린다고 볼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급으로 일감이 계속 내려가며 임금 착복은 물론 체불까지 비일비재하다.

STX조선해양 선박 탱크 폭발 관련 합동 감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STX조선해양 선박 탱크 폭발 관련 합동 감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일당이 25만원이라면 A업체가 2만원, B업체가 2만원 이런 식으로 중간에 떼이는 금액이 많아 실제로 쥐는 돈은 17만원 정도"라며 "여기에 반발하면 그게 관례라며 다른 사람을 고용해버리면 그만이라 작업자들은 그저 체념할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능력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숙련공 일당인 18만원을 받고 실제로는 10만원만 지급한 뒤 차액을 챙기는 사기꾼 업체도 많다"며 "원청의 무관심, 고용부의 미온적 태도,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된 하청업체,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물량팀 등 구조적 문제가 풀려야 대형 사고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량'은 작업물량의 준말이다.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제일 밑바닥인 물량팀은 급한 일감을 처리하고 빠지는 단기 공사팀을 지칭하며 주로 협력업체에 소속된 임시직 노동자이다.

원청 입장에서 물량팀은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어 '입안의 혀'처럼 사용한다.

크게 보면 조선업은 원청-하청-물량팀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다.

조선소 물량팀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추정치만 있다. 이들과 계약을 맺는 원청도 물량팀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10∼30여명이 팀을 짜 3∼6개월 단기간 일을 하고 빠지는 만큼 대부분 사업자등록증 없이 일하고 4대 사회보험도 보장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STX조선해양 선박 폭발 사고의 경우 사측은 숨진 작업자 4명의 소속을 재하도급업체가 아닌 1차 협력업체로 알고 있다가 사고가 난 뒤 부랴부랴 자체 조사에 나서고서야 정확한 소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조선협회에 따르면 2013년 9대 조선소의 기능직 하청 노동자는 10만명을 넘어섰다.

시위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위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조는 중·소 조선소의 경우 용접 등 현장에서 선박을 만드는 기능직의 90% 이상이 물량팀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가 물량팀 하청노동자 489명을 대상을 설문조사를 한 '2015년 조선업종 물량팀 노동조건실태 연구'를 보면 4대 사회보험에 가입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9%에 불과했다.

노동 환경도 열악하다. 원청은 주로 힘들고 위험한 업무부터 하청업체에 넘긴다.

하청업체는 그중에서 다시 힘들고 위험하거나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물량팀에게 넘긴다.

작업 중 다친 물량팀 노동자 10명 중 9명(94.3%)은 산재 처리를 받지 못했다.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라는 답변이 59.5%로 가장 많았으며 '해고될까 봐'가 31%로 그 뒤를 이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빠지는 단기 작업팀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해 자신의 건강권마저 희생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꼭 겉으로 드러나는 부상만 산재가 아니다"며 "미세먼지, 쇳가루 등 체내에서 수년간 축적돼 발병하는 직업병 또한 산재"라고 강조했다.

이어 "용접사 보호복은 3개월에 한 번, 안전화는 6개월에 한 켤레 지급하는 등 보호장구는 실제 사용시간이나 사용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치료는 대부분 자비로 처리하는 현실에서 이런 장비나 비품이라도 현실에 맞게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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