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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여성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다

'82년생 김지영' 열풍 잇는 페미니즘 소설 잇따라
박민정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강화길 '다른 사람' 출간
조남주 [민음사 제공 ⓒ채널예스]
조남주 [민음사 제공 ⓒ채널예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여성혐오가 한국문학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잇따라 터져 나온 문단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자성이 방향 전환에 속도를 붙였다. 취업난에 짓눌린 청년 백수의 절망이 차지하던 자리를 여성혐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대신하는 분위기다.

조남주(39)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재작년부터 열풍이 불고 있는 페미니즘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작품이다. 삼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김지영의 인생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여성이 평생에 걸쳐 시달리는 수많은 성차별·성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김지영은 실제로 1982년생 여자에게 가장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작가는 육아하는 엄마들을 '맘충'(mom+蟲)으로 부르며 비하하는 세태에 충격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25만 부가 팔렸다. 현재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에 이어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2위를 지키고 있다. 작가의 인지도를 고려하면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여성혐오의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했다면 최근 출간된 박민정(32)의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는 여성혐오의 뿌리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올해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행복의 과학'은 민족주의를 비롯한 배제의 이데올로기들과 여성혐오의 결탁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문학, 여성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다 - 2

행복의 과학은 일본 재무장을 위시한 극우민족주의를 설파하는 신흥종교의 이름이다. 기노시타 류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 '류의 이야기-행복의 과학'이라는 책을 썼다. 출판 편집자인 하나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준비하면서 류의 가계에 대해 알게 된다.

하나의 어머니는 류의 할아버지인 CF감독 기노시타 히로무의 현지처였다. 즉 류는 하나의 조카다. 류는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블로그에 글을 올려 가족사를 공개한다. 류의 아버지 미노루는 1991년 서울 압구정동 맥도날드 앞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다. 아버지가 현지처를 뒀다는 사실에 분노해 한국 여자를 죽인 것이다. 피해자는 시골 출신으로 서울 공단에서 일하던 여공이었다.

일본 우익의 혐한과 여성혐오는 미노루에게서 만난다. 불순하고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뿌리다. 미노루 사건은 자연스레 2015년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며 지금 한국사회를 비춘다.

'당신의 나라에서'는 국가·민족간 불균질의 틈새를 파고드는 혐오감정을 재차 확인한다. 사진전을 준비하는 화자는 러시아에 살던 어린 시절 보모의 딸인 윤지나에게 이메일을 받고 과거를 복원한다. 지금은 극동연방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인 윤지나는 당시 연극 유학생이던 화자 부모의 러시아어 교사이기도 했다. 어린 화자에게 라이너스라는 이름을 지어줬었다.

박민정 [문학동네 제공 ⓒ이천희]
박민정 [문학동네 제공 ⓒ이천희]

아버지는 고려인인 윤지나에게 러시아어를 배우기로 하면서 "반반이니까 잘됐네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진짜 러시아 사람'과 있을 때와 달리 러시아어로 대화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윤지나는 '아저씨'로 불리는 한국인 유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지만 화자의 부모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모교 학과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화자는 기억조차 불분명한 불쾌한 과거를 자꾸 들추는 윤지나의 메일이 적잖이 불편하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연대의 의지를 담아 답장을 보낸다. "나는 라이너스의 악몽에서 깨어났고, 당신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남성들의 오염된 역사와 뻔뻔한 광기의 형식들을 균열 내는 새로운 방식이 더없이 냉정한 학구적인 시선일 수 있다는 것,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이성이야말로 이 시대 여성이 든 칼이라는 것을 박민정의 소설은 보여준다"고 평했다.

강화길(31)은 오는 29일 장편소설 '다른 사람'(한겨레출판)을 출간한다. 여성 혐오와 데이트 폭력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최근 급부상하는 영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강화길 [한겨레출판 제공 ⓒ이천희]
강화길 [한겨레출판 제공 ⓒ이천희]

강화길은 올해 초 계간지를 통해 김승옥의 단편 소설 속 여성혐오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사의 명작으로 꼽혀온 작품들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시도 역시 최근 눈에 띈다. 문학평론가 김영희는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통권 177호)에서 김수영의 시들을 다시 읽는다.

'여편네' 같은 여성비하 시어와 아내에 대한 폭력 묘사, 여성을 속물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김수영 시에 반여성주의라는 혐의를 씌웠다. '죄와 벌'의 화자는 길거리에서 아내를 폭행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목격자 중 지인이 있었는지 걱정하면서 버리고 온 우산을 아까워할 뿐이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죄와 벌' 전문)

'죄와 벌'에서는 여성혐오와 자기혐오가 충돌한다. 스스로를 풍자하면서 오히려 가부장적 남성성을 비판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인의 목격과 지우산을 걱정하는 위악적인 사후 진술은, 오히려 시인이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풍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격 대상이 되는 아내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체화한 물신과 타락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지독한 자기혐오를 삭제한 채로 타인에 대한 혐오만을 조명하기는 어렵다"며 "'누구를/무엇을 혐오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시인의 자기혐오와 아내라는 알레고리를 동시에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학, 여성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다 - 5

dad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23 14: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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