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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가짜는 아무리 많은 세월 흘러도 가짜"

송고시간2017-09-05 08:30

미술품 감정학자 이동천 박사가 말하는 '미인도' 논란


미술품 감정학자 이동천 박사가 말하는 '미인도' 논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이라는 '미인도'를 둘러싼 진위논란이 26년째 계속되고 있다. 생전의 천 화백과 그 유족이 위작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했으나 주류미술계와 검찰은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유족이 검찰 수사 결과에 불복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하는 등 반발은 여전한 상황. 이를 계기로 국내 첫 서화감정 전문학자인 이동천(52) 박사에게서 미술계의 진위논란 현실과 이유, 전망에 대해 들어본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에 휩싸인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먼저 비유로써 현 상황을 살펴보자. 한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어린 나이에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잠시 살다가 고아원에 맡겨진다. 이 고아원은 아이의 엄마가 C 여인이라고 발표한다. 이에 C 여인과 가족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뛴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생김새로 봐 C 여인의 자식이 분명하다며 고아원의 견해에 동조하고 결국 검찰 수사에까지 이르나 검찰 역시 친자가 맞는다고 결론 내린다. 문제는 C 여인 유족들이 친자가 아니라며 기존의 주장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다는 점. 이런 가운데 일부 과학 전문가는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C 여인 쪽의 손을 들어준다. 결국 법원으로 사안이 넘어가게 되나 명쾌한 매듭이 언제쯤 지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 26년째 이어지는 '미인도' 진위논란

지난 5월과 7월 하순 오랜 진위논란에 휘말려온 미술계에서 또다시 파란이 일었다.

그중 하나가 서양화 '미인도'의 진위 논쟁. 1991년 시작된 '미인도' 논란에 대해 서울고검이 5월 24일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기존의 검찰 수사 결과를 고수하자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즉각 반발하며 법원 재정신청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는 7월 20일 저서 '천경자 코드'를 출간해 '미인도'가 위작임을 다섯 가지 '코드'로 거듭 주장했다.

한편 7월 27일은 10년 넘게 끌어오던 '이중섭·박수근 화백 위작 사건'이 법원 판결로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대법원은 '물고기와 아이들' 등 다수의 미술품을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작품인 것처럼 속여 판 K 씨 사건에서 "가짜 그림이 맞다"고 최종 판단을 내렸다.

미술계에서 고질과도 같은 진위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뭘까?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과연 없는 걸까?

국내 첫 미술품 감정 전문학자인 이동천(52·전 명지대 예술품 감정학과 주임교수) 박사는 "진위논란의 배경에 바로 '돈'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켜 큰돈을 벌려는 상술이 활개 치는 상황에서 이를 걸러줄 양심적 감정 전문가의 활동은 국내에 사실상 없다"며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짜를 판 업자보다 위작이라고 감정한 감정가를 더 미워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진위논란의 핵심이 돼온 '미인도'에 대한 이 박사의 견해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천 화백이 생전에 작품을 직접 보고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가짜'라고 강력히 항변한 점을 들었다. 이와 함께 지난해 7월 출간한 저서 '미술품 감정비책'을 통해서도 위작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 하나로 작품에 나타나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인중을 꼽았다.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서 찾을 수 없는 인중이 그려져 있는 데다 1974년 이후 작품의 밑바탕에 나타나는 펜 드로잉 필선이 1977년 작이라는 '미인도'에는 없다는 것이다.

"생존 작가의 작품 진위는 본인 의견을 우선해야 합니다. 작가 의견을 무시한 채 진위에 대해 왈가왈부해선 안 돼요. 1991년 '미인도'의 원본을 처음 접한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 결코 아니라며 절필 선언 후 미국으로 떠났어요. '미인도' 논란은 작가 생존시에 끝냈어야 했는데 미술계는 그 골든타임을 놓쳤고 작품 감정의 기본원칙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미인도'는 26×29cm 크기로 김재규 전 중앙정부부장이 소장했던 작품이다. 10·26 사태로 김 전 부장의 재산이 압수되면서 그림 소유권도 정부로 넘어가 198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로 옮겨졌다. 1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이 작품은 1991년 3월 현대미술관의 기획전을 계기로 외부에 처음 알려지게 된다.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현대미술관의 감정 의뢰를 받은 한국화랑협회는 진품 결론을 내렸고 급기야 검찰 수사로 비화했다.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하던 진위논란은 2015년 10월 천 화백의 타계를 계기로 재점화한다. 이 박사의 '가짜' 주장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 감정업체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다른 그림과 비교해 채도가 유의미하게 낮은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2%"라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여기에 천 화백의 차녀가 저서로 위작 근거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 국립현대미술관은 1991년 첫 일반 공개 이후 26년 만인 지난 4월부터 내년 4월까지 과천관에 이 그림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미인도'는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가짜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이비(似而非)', 즉 비슷하지만 아니라는 거죠. 위조자는 최대한 비슷하게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특히 생존 작가 작품을 위조할 때는 더욱 그러해요. '미인도'는 천 화백의 그림과 비슷할지언정 결코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닙니다. 전시 중인 '미인도'를 지난 5월에 직접 보고 위작임을 재확인했어요."

이동천 박사 [사진/임귀주 기자]
이동천 박사 [사진/임귀주 기자]

이 박사는 지난해 7월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한 '뉴델리' 또한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미술품 감정비책'을 통해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코끼리가 그려진 '뉴델리'의 서명 필획 등을 들며 가짜라고 말한 것. 이 박사는 "1998년 천 화백에게서 93점의 작품과 저작권을 기증 양도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이 화백의 1주기 추모전에 위작을 출품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간담회 며칠 뒤에 천 화백의 큰따님인 이혜선 님을 처음 만났어요. 모친의 추모전을 보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잠시 귀국했던 그분은 '뉴델리'가 위작이라는 제 간담회 소식을 듣고 '기적'이라며 안도하셨답니다. '뉴델리' 등 일부 작품이 어머니의 작품인지 불확실해 전시철회를 요구했으나 무시되는 상황에서 '미인도'와 '뉴델리'가 가짜라는 제 주장이 나와 정말 감사했다고 하시더군요."

이 박사의 위작 주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8년에는 저서 '진상(眞相)-미술품 진위감정의 비밀' 출간과 공개 강연을 통해 1천원권 지폐에 그려진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가짜라는 견해를 내놨다. 당시 이 박사는 필획이 느리고 무기력한 점, 사물 묘사가 어설프고 유기적이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위작 주장을 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는 그해 감정을 시행해 진품으로 발표한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가짜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가짜"라며 학술대회, 신문 연재는 물론 '미술품 감정비책'을 통해서도 위작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박사는 "학자란 이익과 관행이 아닌 근거와 논리로써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며 저서 '진상-미술품 진위감정의 비밀'과 '미술품 감정비책'으로 자신의 주장을 명백히 하는 이유라고 들려준다. 감정학이 그 정당성과 영속성을 갖고 뿌리 내리려면 반드시 글로 진위 감정의 근거를 밝혀둬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 남겼을 때 잘잘못의 책임 소재가 분명해집니다. 일시적 주장은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낱 이벤트로 비칠 소지가 있어요. 특히 말로만 진짜, 가짜를 주장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기도 하구요. 감정가는 진위 감정의 근거를 논문, 책 등 기록으로 남겨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게 미흡하다 보니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이 진위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전공서적이나 논문에도 위작 고서화가 버젓이 실리는 게 현실입니다."

이 박사는 "미술품 진위 감정을 감정학의 ABC에 맞게 기술한 책이나 논문이 과연 얼마나 있나 보면 미술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주기적으로 진위논란이 일지만 미봉책으로 덮기에 급급하고, 학문적으로 인과관계가 분명한 진실을 밝히려 하기보다 정서적 감정에 호소하고 만다는 것이다.

작품 '뉴델리'
작품 '뉴델리'

◇ 국내 대학 미술품감정학과 첫 개설 주역

전북 전주가 고향인 이 박사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깊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미술부 활동을 한 그는 고교 시절에 일중 김충현 선생에게서 직접 붓글씨를 배웠고, 전국서예대회에서 수차례 최우수상을 받아 전북교육청으로부터 '전북의 별'로 선정됐다.

그를 미술품 감정학의 세계로 이끈 계기는 1993년의 중국 유학이었다. 명지대 국문과에 다니면서 미술사에 관심을 가졌던 이 박사는 유학 이듬해부터 중국 서화 감정의 최고봉인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중국 국학의 대가인 펑치용(馮其庸·1924~2017), 공필화의 전문가인 옌샤오샹(晏少翔) 등에게서 미술품 감정과 고증 학문을 전수받았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1999년이다. 랴오닝성 박물관의 연구원으로 공부하던 이 박사는 이듬해부터 2년간 선양이공대학 교수로 재직한 뒤 귀국했다. 그리고 2001년 명지대 대학원에 예술품감정학과를 개설해 '감정학'의 씨앗을 국내 최초로 뿌리게 된다.

"가장 큰 가르침과 감동을 안겨주신 스승은 양런카이 선생님이십니다. 제 붓글씨를 보시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제자로 삼고자 하셨지요. 중국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게 맞아 오른쪽 눈을 잃으신 선생님께서는 서예작품 연구 때도 간신배의 글씨는 절대 봐서는 안 된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세상을 앞서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 중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말씀은 '학문지도(學問之道) 여역수행주(如逆水行舟) 부진즉퇴(不進則退)', 즉 '학문의 길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였지요."

양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게 천운이자 축복이라는 이 박사는 '작은 은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공부는 오랜 세월 고생스럽게 해야 하며 글은 결코 한 마디도 빈말로 쓰지 말라'는 가르침 역시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감정학을 강의하는 이 교수는 "'미인도'나 '계상정거도' 진위논란 과정에서 보듯 미술품 감정학이 국내에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귀국할 때는 학생들에게 감정학을 가르치고 중국 미술품 진위 감정에 매진하려 했으나 국내 미술계의 감정학 터전이 워낙 척박해 우리 미술품 감정과 감정학에 뛰어들게 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이처럼 빈약한 현실여건 속에서도 장차 시대에 맞는 감정학과 기법의 등장 가능성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의 중요 열쇠가 될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요. 미술계에서도 유명 화가의 색감과 붓놀림을 인식해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이미 개발됐습니다. 몇 년 안에 AI가 인간의 지성을 확장하고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봐요. 조만간 인공지능 미술품 감정 시스템이 출현하리라 확신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 박사는 "누구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 때문에 그 진보를 멈출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 미술품 감정학의 역사도 감정 능력을 갖춘 전문가와 그 후진의 양성으로 반드시 새로운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편 '미인도' 논란과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8월 초 간부회의에서 "천 화백의 유족이 '미인도' 진품 논란으로 너무 억울해하고 힘들어한다고 들었다"며 "위로방안을 검토해보자"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시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동천 박사가 '미인도'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동천 박사가 '미인도'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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