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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연구자의 집념…독립유공자 훈장 19년 만에 전수

독립유공자 후손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 4년 넘게 추적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독립운동사 등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자 덕에 19년 동안 잠자던 독립유공자의 훈장이 그 후손에게 전수됐다.

국가보훈처와 부산지방보훈청은 1920년 중국 '배달학교'의 교사로 민족교육을 하다 일본군에 잡혀 피살, 순국한 조용수 선생의 애국장을 올해 5월에 선생의 손녀에게 전수했다고 15일 밝혔다.

정부가 조 선생에게 훈장을 추서한 지 19년 만이다.

정부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족보·제적부 상에 적힌 조 선생의 이름이 달라 후손을 찾지 못했다.

국가보훈처의 공훈록 등에 선생의 이름은 조용수(趙龍洙)로 돼 있지만 일제의 기록 등에는 조용주(趙龍珠)로 돼 있다.

이름 마지막 글자인 수(洙)와 주(珠)를 같은 글자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번 훈장 전수의 관건이었다.

국학인물연구소 조준희 소장
국학인물연구소 조준희 소장[국학인물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독립운동가 조현균(애족장 추서) 선생의 후손인 국학인물연구소 조준희(47) 소장이다.

조 소장은 4년 전 '이시열의 민족운동과 대종교'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다 조용수·조용주라는 이름이 혼용되는 것을 알게 돼 자료 수집에 나섰다.

그는 "조 선생의 직계후손 등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지만 훈장이 제대로 전수되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종친회와 도서관 등지에서 일제강점기의 족보를 찾는 것은 물론 온갖 자료를 뒤지며 조 선생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두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후손이 살아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조사결과는 국가보훈처에 알렸다.

실제로 '용주'와 '용수'라는 이름은 달라도 족보와 제적부의 사망일과 본적지 주소 등이 같았다.

게다가 두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기록물도 확인됐다.

김승학 선생이 1965년에 쓴 한국 최초의 독립운동사인 '한국독립사' 하권 270쪽에 보면 "조용석은 정주인(평안북도 정주지역 사람)으로 일측진사로 출신하였고…만주대학살시에 반납배(半拉背·중국 봉천성 통화현의 지명)에서 피체되어 용주와 김기선 등 7명이 참살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조용석'은 배달학교의 교장이고, '용주'는 조용석의 손자다.

이밖에 일제가 1920년 12월 16일에 펴낸 '불령선인' 자료에 보면 '용수'라는 이름과 정주인이라는 내용이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런 내용을 토대로 조 선생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두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 소장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4년간 매달린 추적작업이 훈장 전수로 이어져 보람을 느낀다"며 "이름 표기 과정의 착오로 독립유공자 훈장 전수가 안 된 것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itbul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15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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