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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계하는 시대, 일제 잔재 법률용어 이제 바꿀 때"

무분별한 일본식 표현·법령이름 붙여쓰기도 구태…대법 "개선 이뤄질 것"
세종대왕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종대왕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달 1일부터 형사재판의 생중계가 가능해지면서 직접 판결문을 낭독해야 하는 판사들의 법정 언어생활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로 광복 72주년을 맞지만, 법정에서 사용하는 법률용어와 표현에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폐쇄적 문화 탓에 일본식 한자어와 표현이 난무하는 법정·법률용어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개선 작업도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뎠다.

하지만 재판 생중계로 베일에 싸였던 법정 언어생활 민낯이 드러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개선에 나서야 할 법원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15일 법원과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재판 생중계를 위한 세부지침을 마련 중인 법원은 카메라 앞에서 판결문을 낭독할 판사들이 지켜야 할 법정 언행 정비 작업에도 조만간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식 한자어나 표현 등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될 경우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무분별한 일본식 한자어…'구거·언'→'도랑·둑'

일본을 통해 유럽의 법체계를 받아들인 우리 사법 분야에서는 아직도 일본식 한자나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이 용어를 그대로 법정에서도 사용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본법인 민법이다. 민법 229조와 230조는 하천 주위 토지의 소유권을 규정하면서 각각 '구거(溝渠)'와 '언(堰)'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한다. '도랑'과 '둑'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다.

헌법과 민법, 형법 등 법령 전반에 거쳐 두루 쓰이는 '기타(基他)'도 대표적인 일본식 한자어다. 어떤 상황을 병렬적으로 접속하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말로는 '그 밖의(에)'로 표현할 수 있다.

판결문이나 결정문의 주요 쟁점을 설명할 때 쓰이는 '적극'과 '소극'이라는 용어는 뜻이 불분명한 일본식 한자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주요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따로 요약문을 작성해 공개하는데, 당사자의 쟁점별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적극)',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극)'이라고 표기한다.

'긍정(positive)'하거나 '부정(negative)'한다는 뜻으로 일본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무분별하게 받아 쓴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밖에 '가도(假道)'는 '임시도로', '가료(加療)'는 '치료', '부락(部落)'은 '마을', '사찰(査察)'은 '조사', '시건(施鍵)'은 '잠금'으로 고쳐 사용해야 한다.

국립국어원 청사
국립국어원 청사

◇ 일본식 표현 잦아…법령 이름 붙여쓰기도 일제 잔재

우리 어법에는 맞지 않은 일본식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주격 조사인 '이'나 '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의'를 대신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민법 180조 '혼인관계의 종료한 때'나 저작권법 39조 '저작자의 생존하는 동안'은 각각 '혼인관계가 종료한 때'나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으로 바뀌어야 한다.

조사 '과'나 '로', '를'을 써야 할 자리에 '에'를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찬가지로 일본식 표현이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59조 '보험에 관계있는'이나 민법 316조 '원상에 회복하여야', 국세기본법 15조 '신의에 좇아'는 각각 '보험과 관계있는'이나 '원래 상태로 회복시켜야', '신의를 좇아'로 고쳐 써야 한다.

또 '피난장소 도착시의 조치' '부품의 호환성 제고를 위하여', '지연 등 사유의 요약을 적는다' 등 명사를 무분별하게 나열해 쓰는 것도 일본식 표현이다.

재판 생중계 문제와는 관련이 적지만 '공기업의경영구조개선및민영화에관한법률'이나 '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 '교정시설경비교도대설치법' 등 법령 이름을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쓰는 것도 개선돼야 할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어 문법에는 띄어쓰기가 없어 법령 이름은 물론 본문에서도 띄어쓰기하지 않는다.

우리 법령 이름은 한글 맞춤법에 따라 띄어쓰기가 원칙이다.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나 전문용어는 법령문의 간결성과 함축성을 고려해 단위별로 띄어 쓴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대법원 산하 법원도서관에서 올바른 법정 언행 사용을 위한 개선 작업을 벌였지만, 오랜 기간 쌓여온 일제 잔재 용어를 전부 개선할 수는 없었다"며 "재판 생중계 제도가 시작된 만큼 법정 언어생활도 전방위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선고 재판, 생중계 가능해 졌다
박근혜 선고 재판, 생중계 가능해 졌다(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대법원이 25일 대법관 회의에서 오는 8월 1일 자로 현행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재판선고의 생중계를 허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재판장의 허가를 거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선고 결과를 전 국민이 법정에 가지 않고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피고인의 동의가 없어도 공적 이익이 더 크다고 재판장이 판단할 경우 중계방송이 허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7.7.25
kane@yna.co.kr

hy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15 09:2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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