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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의 파리회의 활동 재평가해야…식민지배 현실 알려"

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 국제학술회의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회의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회의(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다. 2017.8.10
kane@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파리를 무대로 전개된 민족대표들의 독립외교운동은 시도했던 사업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성과 없는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파리 외교 활동은 일본의 부당한 식민지 지배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의 필요성을 주지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독립기념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이규수 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1919년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서의 민족대표 활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강화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에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려 했고,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당시 여운형은 중국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했고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에 파견했다. 김규식은 파리에 도착한 뒤 파리한국통신부를 설치했고, 13쪽 분량의 비망록을 작성했다.

이 교수는 "김규식이 파리에서 독립공고서를 각국 대표에게 보냈지만, 강화회의 측은 한국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강화회의가 아니라 국제연맹에 문의하라는 답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구 열강은 패전국 식민지 이외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미국 또한 일본의 입장을 대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 활동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파리 강화회의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교수는 파리에서의 경험과 좌절이 이후 민족운동 전개 과정에서 발전적인 모습으로 소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파리강화회의의 실패 체험은 또 다른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줬다"고 분석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3·1 운동 전후 국제정세의 변화와 한국독립운동'을 주제로 열렸다.

뤄민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주임은 3·1 운동과 중국 5·4 운동의 국제적 배경을 설명했고, 김한미 미국 휘튼대 교수와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각각 미국 워싱턴회의와 모스크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의 의의에 대해 발표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10 13: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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