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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ARF서 외톨이 된 북한, 국제사회 메시지 읽어야

(서울=연합뉴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7일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연설에서 "우리가 선택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했지만 역시 북한의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 지난달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현장을 참관한 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 내용에서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리 외무상이 "우리는 이 길에서 최종 관문을 넘어섰으며 미 본토 전역을 우리의 사정권 안에 넣었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줬다"는 협박을 추가한 것만 새로울 뿐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잇따른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강화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하며 뻗대기만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청산되지 않으면 핵·미사일 협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적대시 정책만 없어지면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말로 뒤집어 들을 수도 있다. 조건부 협상을 바라는 북한식 표현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4대 대북정책 기조'를 통해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마당에 무엇을 어떻게 더 보장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리 외무상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대화 제의에 대해 "남측이 미국과 공조하에 대북압박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제안에는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ARF 외교장관회의 연설에서 리 외무상은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남조선 당국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는 말만 했다. 우리 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하지만 리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한국 측 제안을 전적으로 거부하진 않았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중국 관영언론이 전했다. 대북 접근 방식으로 대화를 강조해온 중국의 전략적 입장을 반영한 해석일 수 있으나, 리 외무상과 왕 외교부장의 양자회담에서 오간 대화의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대화의 돌파구가 열리기 어렵다. 결국 북한의 외교적 고립만 심화하고 제재와 압박의 강도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 ARF 외무장관 회의에서 처절하게 외교적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ARF는 북한이 꼬박꼬박 참여해온 중립적 다자안보협의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을 것 같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많은 국가와 양자회담을 시도했지만 26개국 중 중국과 러시아 이외에는 응한 나라가 없었다.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필리핀의 알란 카에타노 외교장관만 아세안을 대표해 리 외무상을 만났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대북 메시지에 혼선이 빚어질 것을 경계해 의장국만 북한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 외무상이 핵 보유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도 호응은 없었고, 오히려 북핵 불용 원칙을 강조하거나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규탄하는 발언만 이어졌다고 한다. 리 외무상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북한은 외교적 고립감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말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의지를 읽어야 한다. 나아가 핵만 보유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고,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존을 도모하는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08 19: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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