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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미국 경제학 아버지 어빙 피셔, 주식으로 전 재산 날렸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역대 최고치인 2,400선을 넘나들면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코스피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주식을 매수하려는 대기성 자금과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세금 인상과 부동산대책 등으로 최근 주가가 출렁거렸지만 대세 상승장이 더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자가 급증했음을 의미한다.

투자자가 기대한 방향과 반대로 코스피가 추락한다면 차익은커녕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숨은 역사 2cm] 미국 경제학 아버지 어빙 피셔, 주식으로 전 재산 날렸다 - 1

실제로 올해 7월 신용융자 잔고가 많이 늘어난 코스피 상위 20개 종목 가운데 10개가 내렸다. 절반 정도가 손실을 봤다는 얘기다.

최근 증시가 활황을 보이자 증권사 지점에는 주식 거래를 의뢰하는 고객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주가는 일정 정도 오른 뒤 예외 없이 조정 국면을 거치거나 폭락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투자전략이 필요하다.

증시 역사를 보면 세계 최고 경제학자나 수학자, 유명 정치인 등이 쪽박을 찬 사례가 수두룩하다.

미국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 어빙 피셔(1867~1947년)도 평생 모은 재산을 주식 투자로 날렸다.

물가 수준은 화폐량으로 결정된다는 화폐수량설 등을 주장한 피셔는 근대 경제학 이론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뛰어난 수학 능력을 바탕으로 각종 경제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한 그의 학문은 신고전파 초석을 다진 밀턴 프리드먼 등에게 계승된다.

피셔는 학교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 쓰는 여느 학자와 달리 금융시장에 뛰어들어 주식 거래를 하고 시장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이 때문에 월가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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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회사를 운영해 1천만 달러 이상의 재산도 보유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 경제학자로서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주식시장에서는 참패를 당한다.

결정적인 시기에 시장 흐름을 거꾸로 읽은 탓이다.

1929년 미국 상공으로 몰려든 대공황 먹구름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주가 폭락이 임박하면서 시장이 동요했는데도 남의 돈으로 투기하는 일부 작전세력 때문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경제인단체 초청 연설에서는 "주가 상승이 장기 지속 가능한 고원지대에 도달했다"며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통화를 잘 관리하므로 경기순환 변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피셔가 믿었던 FED는 중요한 순간에 작동하지 않았다.

불황기에 금리를 낮추거나 국채를 사들여 돈을 풀어야 하는데도 고금리를 방치한 탓에 은행들이 줄도산했다.

FED의 기능 마비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초대 총재인 벤저민 스트롱의 돌연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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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은 미국의 1차대전 참전 등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될 때마다 FED에 영향력을 미쳐 통화정책을 교묘하게 조정했다.

1923년에는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여 시중에 돈을 방출함으로써 금리를 내리는 공개시장조작을 처음 시도해 성공한다.

1차 대전 종전 이후 심각한 불황을 겪던 유럽의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세계 금융계 황제로 불리던 JP모건을 등에 업고 통화정책을 좌우하던 스트롱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황이 닥친다.

이 때문에 스트롱이 2~3개월만 더 살았어도 대공황을 막거나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피셔는 스트롱 사후 FED가 무기력해진 사실을 간과한 탓에 안개로 가려진 절벽을 고원지대로 착각했다.

1929년 10월 24일 날이 밝아 안개가 걷히자 낭떠러지가 드러났다. 모든 주가가 일제히 곤두박질친 것이다.

주가가 바닥 모르게 추락하는데도 피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장기간 낙관론을 고수한 탓에 보유 주식을 손절매하지 않아 무려 800만∼1천만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런던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불과 3년 만에 89% 증발했다.

피셔는 여러 차례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47년 죽는 날까지 가족 등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

영국 최고 천재 수학자 아이작 뉴턴(1643~1726)도 주식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물리학과 천문학, 수학, 신학 등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으나 주식시장에서는 쫄딱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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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사들인 종목은 투기 광풍에 휩싸인 남해(south sea)회사 주식이다.

중남미 대륙 개발에 투자하는 이 회사는 금은보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로 꽤 오랫동안 급등세를 이어갔다.

소액으로 매매차익을 챙긴 뉴턴은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 전 재산도 모자라 남의 돈까지 끌어들여 주식을 사들였다가 대참사를 겪는다.

남해회사 주식은 매수 후 2개월 만에 정점을 찍고서 거품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뉴턴은 손절매 시점마저 놓쳐 원금 90%를 날리고 시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온다.

과학적 사고능력이 뛰어난 뉴턴이 주먹구구 투자를 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때 뉴턴은 "천체 움직임은 계산했지만, 인간 광기는 계산하지 못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영국 2차대전 영웅 윈스턴 처칠도 주식 투자로 망신을 당했다.

장관 31년, 총리 9년을 지낸 처칠이지만 증시에서는 젬병이었다.

처칠이 1929년 대공황 직전에 주식을 사들였다가 투자금 전액을 날려버렸다.

상대성원리로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노벨상 상금 2만8천 달러로 주식을 매수했으나 모두 휴짓조각이 된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테마주에 손을 댔다가 평생 빚에 쪼들려 살았다.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베스트셀러 출간으로 뭉칫돈을 만졌으나 당시 뜨겁게 달아오르던 광산주 등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다.

은행 돈까지 빌려 가며 손실 만회에 나섰으나 원금조차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다.

그때 부채상환 압박에 시달리자 돈벌이에 급급한 은행 현실을 꼬집는 발언을 한다.

"은행가란 햇빛이 비칠 때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을 빼앗아간다"

세계 저명 경제학자 중 주식으로 재미를 본 사람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6~1946년)가 거의 유일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장함으로써 대공황 해결에 기여한 케인스가 주식시장에 뛰어든 것은 1920년대 후반이다.

주식 거래 후 머잖아 대공황이 닥쳤으나 케인스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백만장자 대열에 올라선다.

남들이 추락할 때 자신은 날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주식 고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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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은 특정 종목을 철저히 분석해 성장 잠재력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이는 가치투자다.

왕립 대학인 킹스 컬리지 기금을 운영하고 투자펀드와 보험회사 자문역을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케인스도 한동안 주식시장에서 손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고수익 배경을 단순히 실력으로만 평가하기는 무리다.

주식의 미래는 신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피셔 몰락 이후 월가에서는 유명 경제학자가 무슨 전망을 하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경제 전문가의 투자 실력이 이 정도인데 시장 정보력과 분석력이 절대 열세인 개인이 충동구매를 한다면 안대를 끼고 고속도로로 뛰어드는 것만큼 위험하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떼돈을 번 케인스보다는 쪽박을 찬 피셔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07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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