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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평화와 인권'의 성지 된 노근리

(영동=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가장 대표적인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꼽힌다. 학살 현장인 쌍굴다리 인근에 조성된 노근리 평화공원은 부끄러운 역사 흔적과 아픈 기억을 통하여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노근리 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전경 [사진/전수영 기자]
노근리 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전경 [사진/전수영 기자]

◇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학살

"노근리 사람들은 두 번 죽었는지도 모른다/ 미군은 인민군이 두려워 그들을 죽였고/ 우리는 미국이 두려워/ 그들의 진실을 외면했다/ 서기만 하면 죽은 겨/ 오기만 하면 죽는 겨/ 삶은 죽음보다 처절했다/ 반세기가 흘러도 쌍굴다리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 정삼일 시 '말하라! 그날의 진실을' 中에서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북한군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1950년 7월 26일 정오경 500∼600명의 피란민이 철로 위를 걸어서, 그 선두가 노근리 쌍굴 서쪽 약 100m 지점까지 접근했을 때 미군기가 피난민 대열에 공중폭격을 가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이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쌍굴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자 미 제1기병사단 7기갑연대 부대원들은 이들을 가두어 놓고 3박 4일 70여 시간 동안 총질을 해댔다. 이때 젊은 사람들은 일부 탈출했으나 어린이, 여자, 노인들은 쌍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쌍굴은 두세 겹씩 덮인 주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무고한 비무장 민간인이 비참하게 희생된 이 사건은 노근리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짓누른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살아남은 유족은 오히려 반미나 빨갱이로 몰릴 것을 우려해 학살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요구하지도 못했다.

위령탑의 조각상은 당시 노근리 피란민 대열을 형상화했다.
위령탑의 조각상은 당시 노근리 피란민 대열을 형상화했다.

당시 장남과 딸을 잃은 고(故) 정은용 씨는 1994년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펴내 노근리 사건의 실체를 세상에 알렸지만, 진상규명 작업은 당사자 대다수가 사망한 데다 가해자의 은폐로 지난한 싸움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 만인 1999년 AP통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비로소 한미 양국정부가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01년 1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노근리 사건과 관련해 사과 입장이 아닌 유감을 표명했다.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학살됐는데, 죽인 사람은 없었다. 이후 2004년엔 진상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 신고를 받아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이 희생자로, 2천240명이 유족으로 인정됐다.

2011년 10월 조성된 '노근리 평화공원'에는 노근리 사건의 전말을 엿볼 수 있는 평화기념관,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관 등이 들어서 있다.

평화기념관 전경
평화기념관 전경

◇ 평화기념관, 인권의 소중함 조명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설계자인 고 이종호 건축가의 작품인 평화기념관은 평화의 샘, 추모의 방, 고통의 벽, 전시실 등으로 구성됐다. 방문자센터를 나와 회색빛 콘크리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 전시실이다. 입구의 영상실에서는 '인권과 평화의 이름, 노근리'라는 제목의 15분짜리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전시실 첫 공간에는 "인권회복은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으로 이뤄지며, 평화는 누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평화기념관이 지어진 이유다.

'아픔이 서린 기억의 조각' 코너에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생존자 24명과 미군 4명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정명자 할머니(당시 10세)는 "아기의 엄마가 엎드려 돌아가셨는데 아기가 배가 고프니까 등에서 내려와서 젖을 빠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고 증언했다.

지하 전시실
지하 전시실

쌍굴을 재현해 놓은 '비통의 길'을 지나면 노근리 사건 이후를 조명한 지상 1층 전시실이다. '진실의 문을 두드리다'와 '진실을 향한 목소리' 코너에서는 노근리 사건을 기록한 한국사 교과서, 고 정은용 씨의 손해배상청원서 등을 통해 진실 규명에 나선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AP통신의 취재 과정, AP 보도 이후 국내 매체에서 노근리 사건을 보도한 내용, 한국과 미국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 노근리사건 특별법 관련 관보 등이 시선을 끈다.

지상 1층 전시실
지상 1층 전시실

노근리 평화공원 맞은편에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 위에 축조된 아치형 교각인 쌍굴다리(등록문화재 제59호)가 있다. 원통한 죽음과 생존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쌍굴다리의 수많은 탄흔은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탄흔을 새기는 듯하다. 쌍굴 내부에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보강공사를 하면서 총탄 자국 등 그 당시 흔적이 많이 훼손된 것이 아쉽기도 하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노근리 사건의 피해유족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근리 국제평화재단'은 '노근리인권평화학술제' '노근리세계대학생인권평화캠프' '노근리평화상제정 및 시상' 등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은 국내외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노근리 평화공원은 인권과 평화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05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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