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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다크 투어리즘, 어두운 역사현장 돌아보기

(철원=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뜨고 있다. 말 그대로 단순히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며 자기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아프거나 부끄러운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여름휴가, 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다크 투어리즘 명소를 둘러보면 어떨까.

철원평화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비무장지대(DMZ)와 북녘땅인 평강고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철원평화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비무장지대(DMZ)와 북녘땅인 평강고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 DMZ, 남북 분단의 상징

남북 분단의 상징이자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임을 알려주는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는 한국전쟁 발발 3년여 만인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됐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 방향 2㎞(북방한계선, NLL), 남쪽으로 2㎞(남방한계선, SLL) 사이의 완충지대다.

한반도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DMZ는 서쪽 강화에서 시작해 파주·연천·철원·화천·양구·인제를 지나 동해 고성까지 이어진다. 전체 거리는 155마일(248㎞)에 달한다. 이곳은 '어떤 총칼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로 'PLZ'(Peace Life Zone, 평화생명지대)으로도 불리지만 실제로는 양측 초소가 설치돼 있고 중무장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전쟁의 총성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멈추었지만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DMZ를 아시아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 25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던 철원에서는 승일교, 제2땅굴, 평화전망대, 월정리역, 노동당사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1975년 발견된 제2땅굴 입구
1975년 발견된 제2땅굴 입구

◇ '기억하라 총성은 멎었지만…'

DMZ 민통선(민간인 출입 및 행위 통제구역) 안보관광은 한탄강 가운데 우뚝 선 바위와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총칭하는 고석정(孤石亭)에서 시작한다. 고석정 주차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하루 4차례 진행하는 안보관광(매주 화요일 휴무)을 신청한 뒤 출입증을 받아 셔틀버스나 개인차량으로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

양지리 통제소를 지나 민통선 안에서 처음 만나는 곳은 1975년 초병이 경계근무 중 발견한 제2땅굴이다. 화강암층을 뚫어 만든 땅굴은 지하 50∼150m 지점에 있는데,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1.1㎞ 정도 파 내려왔다. 길이 3.5㎞, 폭 2.1m, 높이 2m인 땅굴 입구엔 땅굴 탐지 과정에서 지뢰와 부비트랩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 8명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안전모를 쓰고 땅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억하라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끝난 것은 아니다'라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허리를 굽히고 500여m 들어가자 갱도 화차와 레일, 북한군이 식수로 쓰던 우물이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지하수는 쉼 없이 경사가 낮은 북쪽으로 흘러가지만 철제문이 가로막아 더는 들어갈 수 없다. 막연하기만 하던 분단의 현실이 피부로 와 닿는다.

어둡고 습한 땅굴을 나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철원평화전망대로 발길을 옮긴다. 바로 앞에 남방한계선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는 농경지였으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서 늪지대로 변한 비무장지대다. 2층 전망대에서는 백마고지, 피의 능선, 평강고원, 북한 선전마을, 낙타고지 등 중부전선 최북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궁예가 태봉국을 꿈꾸며 세운 DMZ 내 궁예도성의 터는 무성한 숲에 가려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다. 태봉국의 흔적은 전쟁의 상흔에 지워졌다.

이주섭 문화관광해설사는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10일간 12차례의 전투와 7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격전을 치른 끝에 철원평야를 지켜냈다"며 "이곳이 바로 민족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참혹성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라고 말한다.

한국전쟁 상흔이 남아 있는 월정리역
한국전쟁 상흔이 남아 있는 월정리역

◇ 비극 웅변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내려와 옛 철의 삼각전망대를 리모델링한 두루미전시관과 경원선의 간이역인 월정리역에 들렀다. 월정리(月井里)는 '달빛 비치는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전쟁의 상흔이 60년 세월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긴장의 땅이다. 숭숭 구멍이 뚫린 역사(驛舍), 세월에 녹슬어 형상도 알아보기 힘든 열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이 허리 찢긴 한반도의 비극을 묵묵히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표지판의 '평강 19㎞, 원산 123㎞'라는 거리 표시가 새삼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경원선 최북단 분단 지점인 월정리역에서 철원평야를 따라 다시 민통선 밖으로 나오다 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철원제2금융조합(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137호), 얼음창고(등록문화재 24호), 농산물 검사소(등록문화재 제25호) 등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들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아픈 역사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철원제2금융조합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철원제2금융조합

관전리 통제소를 지나면 바로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발해를 위하여' 촬영지로 유명해진 옛 철원군 노동당사(등록문화재 제22호)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전 철원 일대가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지은 노동당사는 양민수탈과 수많은 주민이 체포, 고문, 학살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한 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지상 3층의 러시아식 건물인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총탄과 포탄 자국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민통선 밖에 있는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민통선 밖에 있는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다시 고석정으로 돌아오면 안보관광 코스가 끝이 나는데, 고석정 바로 옆에는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승일교(昇日橋, 등록문화재 제26호)가 있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승일교는 러시아식과 미국식 공법이 혼합된 남북합작의 다리다. 1948년 북한 당국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됐고, 1958년 한국 정부에서 완성했다. 다리 이름은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로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는 변화냐 정체냐, 진전이냐 퇴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남북합작으로 만든 승일교 교각 위에서 남북화해를 고대하며 신경림 시인의 '승일교 찬시'를 읊어본다.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고/ 짐승들 짝지어 진종일 넘고…(중략)…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

북한이 착공하고 남한이 완공한 승일교
북한이 착공하고 남한이 완공한 승일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8/05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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