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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 ⑧ 철밥통 박차고 '산 사나이'로 살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 "좋아하는 일 하다 인연 닿아"
안내·답사 위해 1년에 100번 이상 남산 오르는 남산 사나이
(경주=연합뉴스) 경북 경주남산연구소장 김구석씨가 경주 남산에서 강의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경북 경주남산연구소장 김구석씨가 경주 남산에서 강의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직장 다니던 친구들은 벌써 은퇴했지요. 공무원 동료도 마찬가지고요. 일찌감치 공무원 그만두고 이쪽 길로 접어든 덕에 아직 남들한테 선생 소리 듣고 안 사능교(삽니까)."

경북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경주남산연구소에서 만난 김구석(64) 소장이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한 말이다.

김 소장은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듣는 사람은 1년에 400명에 이른다.

매주 삼국유사를 비롯해 신라와 관련한 고서를 한자로 된 원문으로 읽는 정기 학술모임을 이끌고 수시로 유적을 답사한다. 요청이 들어오면 경주 문화유적 안내도 직접 맡는다.

대중을 상대로 한 남산 안내는 후학들이 맡고 있다. 그래도 아직 답사나 안내를 위해 1년에 100번 정도 남산에 오른다.

남산 지킴이, 남산 사나이란 별명이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경주를 대표하는 산은 단연 남산이다. 한동안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동궁, 월지(안압지) 등에 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남산이 지닌 가치를 다시 평가함에 따라 2000년 세계유산에 올랐다.

남산은 높은 봉우리라고 해봐야 해발 500m가 채 안 되는 금오봉(468m), 고위봉(494m)이 전부다. 그러나 곳곳에 불상, 탑, 왕릉, 절터, 산성터가 남아 있다.

경주남산연구소가 지금까지 파악한 문화유적은 672점이다. 이 가운데 보물 13점, 사적 13곳, 중요민속자료 1곳이 있다. 오죽했으면 남산이 노천박물관이라고 했을까.

경주 시민 사이에 남산이라고 하면 첫손 꼽는 사람이 바로 김 소장이다.

(경주=연합뉴스) 김구석 경북 경주남산연구소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김구석 경북 경주남산연구소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 소장은 2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했다.

흔히 '철밥통'이라는 공직을 왜 그만뒀느냐는 질문에 그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군에서 제대한 뒤 빌빌대다가 스물여덟 먹은 1981년 공직에 입문했다. 경주 토박이로 바로 옆 동네인 울산군(현 울산시 울주군)에서 산림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공무원이나 마음은 늘 문화유산에 있었다. 주말이면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경주 유적지 곳곳을 누볐다. 불교 신자여서 어릴 때부터 불교유적을 찾던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는 "문화재와 관련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그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고 털어놓았다.

1980년대부터 사진을 찍을 때 일반 필름 대신 비싼 슬라이드 필름을 썼다. 슬라이드 필름을 확대해 비추는 환등기도 들고 다녔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88년 울산군에서 경주군(현 경주시)으로 옮긴 뒤에는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 1984년에 만든 남산사랑모임을 활성화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나 유적에 일반인 관심이 적을 때였다. 1988년에는 전통문화 전문출판사인 대원사가 펴낸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중에서 '경주 남산'편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빛깔있는 책들'은 교양서적으로는 드물게 꾸준히 인기를 끈다.

경주 남산 편 글은 경주 향토사학자로 '영원한 신라인'이라고 하던 고 윤경렬 선생이 썼다. 김 소장은 다른 사진작가와 함께 사진을 맡았다.

그는 "제대로 작품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고 그냥 그동안 마구 찍어놓은 사진을 제공했을 뿐"이라며 "다만 나처럼 오랫동안 남산 사진을 찍은 사람이 드물었기에 내 사진을 썼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언론 매체에서 소개해 우쭐하기도 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김구석 소장
김구석 소장(경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김구석 경북 경주남산연구소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1991년 공무원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23일간 인도 불교유적지를 찾았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시기여서 휴가 20일과 일요일까지 더해 다녀왔다.

그 뒤 2번 더 인도를 찾은 그는 당시 찍은 사진을 모아 1996년 경주시청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그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남산을 홍보했다.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열정이 넘쳐 좋아서 한 일이었다.

1993년에는 윤경렬 선생과 함께 '겨레의 땅 부처님 땅'을 출판했다. 이번에도 사진을 맡았다.

문화와 관련한 책이 별로 팔리지 않던 때여서 초판 원고료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큰 인기를 끌며 김 소장 책도 덩달아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문화재나 유적을 찾아가는 답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김 소장을 찾는 이도 늘었다. 남산을 김 소장만큼 아는 이가 없어서다. 자신을 찾는 사람에게 무료로 남산을 안내하고 휴가를 내서 소개했다.

절반은 시청에서, 절반은 남산에서 근무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무원 생활을 했으나 마음은 늘 남산에 있었다. 게다가 체질적으로 공무원이 맞지 않았다.

결국 군 복무 기간 3년을 포함해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는 20년 근무 기간을 채우자마자 1999년 마흔여섯 살에 명예퇴직했다.

IMF 구제금융으로 공무원 인기가 치솟고 실직자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 싫더라고요. 체질적으로 공무원 생활이 안 맞았심더(맞았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은퇴 준비를 했지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니더(같았습니다)."

명퇴하자마자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하며 경주에 있는 서라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대학 학부 과정(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을 마쳤을 뿐이었지만 대학 측은 김 소장 실력만 믿고 강의를 맡겼다.

서라벌대 강사만 13년간 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사회문화원에서도 강의했다.

김 소장은 1999년 퇴직 직전에 인터넷상에 남산연구소를 만들었다. 정식으로 사무실을 갖춰 설립한 것은 이듬해였다.

그때부터 남산연구소장으로 남산 가치를 알리고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을 본격화했다.

경주남산연구소는 남산안내소를 운영하고 유적답사와 남산달빛기행을 주도한다.

남산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해 홍보하는 일도 맡았다. 남산 삼릉계곡 바둑바위에 그림엽서를 놓아두고 사연을 적어 넣어두면 보내주는 일도 한다.

그 중심에 김 소장이 있다.

경주 남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도 김 소장을 비롯해 경주 뜻 있는 시민이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를 따라 남산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해박한 지식과 시원한 입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김 소장은 "공무원 생활을 할 때는 한자리에 오랫동안 있지 못할 정도로 지겨웠는데 남산 가는 일은 전혀 지겹지 않다"며 "처음부터 이렇게 살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보니 인연이 닿아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sds123@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7/09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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