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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인민군 혼란 빠뜨린 '비밀 병기'(종합)

제주 출신 통신병이 제주어 교신…도청당해도 내용 파악 어려워
2차 대전서 미군 통신병 활약한 인디언 나바호족 사례서 착안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ㄴ + 아래아 ㆍ)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탄환이 빗발치는 치열한 전투에서 난데없이 제주어가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중부전선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다.

도솔산 지구에서 펼쳐진 이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 2개 사단을 격퇴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우군 전선의 활로를 개척했다.

한국전쟁 참전한 해병대
한국전쟁 참전한 해병대[해병대 3·4기 전우회 제공=연합뉴스]

한국전쟁의 판도를 바꾼 도솔산 전투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작전'이 있었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주 사투리를 다른 지역 출신의 아군도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니 인민군이 교신을 몰래 엿들어 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는 코앞에 있는 인민군과 육탄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전투 중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렵게 돼 장교들의 고민이 많았다.

1951년 도솔산지구 전선
1951년 도솔산지구 전선[해병대 3·4기 전우회 제공=연합뉴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산등성이에 적의 관측소로 보이는 수상한 하얀색 건물을 전투기로 폭파해달라고 미국 해병대에 무전을 쳤다가 하얀 벽이 금세 검게 칠해져 이런 사실을 모르는 전투기가 건물을 찾지 못해 그냥 돌아가 폭격이 실패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어 교신은 당시 공 대대장의 건의로 공식적으로 이뤄졌다.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천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

3·4기생 대부분은 오현고·한림고·제주농고 등 고등학생 재학생들로 정규 교육을 받아 표준어도 구사할 수 있었고 당시로써는 학력도 높았다. 또 애국심도 남달랐다.

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해병대 4기로 도솔산 전투에 참전한 해병대 3·4기 전우회 박영찬 부회장은 "상관의 지시를 잘 못 듣고서 나도 모르게 '무시거랜 해수과?'(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제주어로 말했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는 상관의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며 웃음 지었다.

도솔산 전적지 시찰하는 이승만
도솔산 전적지 시찰하는 이승만 [연합뉴스 자료 사진]

강씨는 "제주어는 '~라고 햄쪄'(한다) 등 서술어가 짧고 표준어와 전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든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부의 결정에 따라 중요사항이든 가벼운 사안이든 모든 교신을 전부 제주어로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작고한 해병대 종군기자인 고영일씨는 해병대 3·4기 전우회가 발간한 '인천상륙·서울수복 작전의 주역'에서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적에게 점령되었을 때 염리동의 미군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선전화기가 적에게 뺏겨 부대 간 통화는 도청됐을 것"이라며 제주 출신 해병대가 작전에 동참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제주어 교신 작전이 진행됐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런 비밀 교신작전은 해병대 역사관에 전시되거나 해병대 70년사 등에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참전한 장교 등 장병들의 증언은 있으나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병대 역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3·4기생 가운데 제주 출신이 많았고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장병들의 증언으로 제주어 교신작전은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에 대한 채록 등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병대 3·4기 전우회 박영찬 부회장
해병대 3·4기 전우회 박영찬 부회장(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해병대 3·4기 전우회 박영찬 부회장이 23일 전우회 사무실에서 도솔산 전투 참가 당시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6.25

ko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25 16:2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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