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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죽·허정숙·고명자…혁명이 직업이었던 '세 여자'

조선희 장편소설…일제강점기 공산주의 혁명가들 생애 그려
조선희 [한겨레출판 제공]
조선희 [한겨레출판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2000년 조선희 당시 씨네21 편집장은 소설을 쓰겠다며 사직했다. 2년 뒤 첫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을 내고 나서 한국영상자료원장,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일했다. 서울문화재단에도 지난해 사직서를 냈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지만 미뤄둔 소설을 마치겠다고 했다.

조선희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세 여자'(한겨레출판)는 햇수로 12년 걸린 작품이다. 2005년 자료수집을 시작했으나 두 차례 공직을 맡으면서 집필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지난해 소설가로 돌아온 뒤 원주 토지문화관에 두 달간 머물며 작업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 여자'는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주세죽·허정숙·고명자. '조선공산당의 트로이카' 박헌영·임원근·김단야의 애인이자 동지로 역사에 작지 않은 흔적을 남겼지만 지금껏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작가는 역사기록에 근거해 이들이 막 스무 살 남짓이었던 1920년부터 30여 년간의 삶을 복원한다. 셋의 생애는 조선의 공산주의운동사, 나아가 식민지배와 해방전후 격동의 근현대사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주세죽과 허정숙은 1920년 유학을 떠난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만나 가까워진다. 학문을 익히려면 도쿄(東京), 행동이 필요하면 국제도시 상하이로 가던 시대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 아래 있던 상하이에서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든다.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아지트였던 사회주의연구소를 드나들며 주세죽은 박헌영과, 허정숙은 임원근과 사랑에 빠진다.

주세죽·박헌영은 상하이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자본론' 독일어판에 손을 얹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른다. 몽양 여운형의 주례사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조국의 독립과 무산자계급 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까?"

귀국한 이들은 사회주의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하고 조선공산당의 청년조직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한다. 이화학당에 다니다가 합류한 고명자는 김단야와 연인이 됐다. 세 여자는 함께 단발을 하며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다.

고명자·주세죽·허정숙(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고명자·주세죽·허정숙(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허정숙·주세죽·고명자(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허정숙·주세죽·고명자(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당시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여하고 일본 공산당과도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세 여자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동시 달성을 꿈꿨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불법화하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이 발동하면서 꿈은 조금씩 멀어진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소련으로 탈출한 주세죽은 당 재건을 위해 상하이로 갔다가 남편 박헌영과 이별하고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김단야와 재혼하지만 그가 일제 밀정으로 몰리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허정숙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를 이끌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다. 고명자는 경성에서 당 재건을 노리다가 전향서를 쓰고서 친일잡지 '동양지광'에서 일한다. 그를 끌어들인 인물이 33인 민족대표에서 친일 반민족으로 돌아선 박희도다.

아시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해방 소식을 접하는 세 여자의 심경은 당시 한반도 주변 정치지형만큼이나 복잡하다. 서울의 고명자는 전향의 자괴감을 딛고 여운형을 돕는다. 허정숙은 중국 연안의 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정치사상사 교관으로 신입대원들을 가르쳤다. 유형지인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은 주세죽은 모스크바에 두고 온 딸 생각과 함께 회한에 잠긴다.

소설은 1991년 주세죽과 박헌영의 딸 비비안나의 서울 방문에서 시작해, 같은해 허정숙이 평양 대동강변 아파트에서 소련 당기관지 '프라우다'를 읽으며 말년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주세죽은 1953년 딸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세상을 떠났고, 허정숙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측근으로 고위직을 지내다가 1991년 사망했다. 고명자의 최후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반탁운동은 해방공간의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버렸다." 후반부에는 찬탁·반탁으로 나뉜 해방 직후의 혼란, 분단이 고착화하고 김일성이 '주체'를 내세워 봉건적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진다. 오늘날 한반도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2017년에도 여전히 분단의 결과는 악몽으로 돌아오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노골적인 이권투쟁은 제국주의시대의 데자뷔이고, 해방공간의 트라우마는 정치적으로 쉽게 격앙되고 이념으로 편 가르는 습성 속에 살아 있다" 1권 400쪽, 2권 380쪽. 각 1만4천원.

주세죽·허정숙·고명자…혁명이 직업이었던 '세 여자' - 4

dad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22 18:1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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