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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총리' 콜이 메르켈에 남긴 유산… "유럽 속 독일"

메르켈 앞엔 유럽 결속하고 강화하는 난제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독일 '통일총리'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영면에 들어갔다.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거목의 스러짐을 바라보는 독일과 유럽인들의 시각과 감정은 여느 정치인들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전후 서독을 다시 세운 이가 같은 당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총리였다면, 콜은 '유럽 속 독일' 플랜을 가속하며 분단된 동·서독의 통일 대역사를 이끈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이다.

아데나워 집권 14년을 넘겨, 최장 16년을 집권한 그였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가 드리운 그림자는 크고도 짙다.

유럽 명예시민이라는 영예에 걸맞은 유럽연합(EU) 차원의 장례식이 일종의 헌정 기획처럼 준비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콜의 정치 역정을 현 독일, 유럽의 현실과 오버랩하여 회고할 때 앙겔라 메르켈에게 그가 남긴 유산을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평화와 번영을 그 존귀한 명분으로 앞세운 프로젝트인 현대 유럽 만들기는 애초 독일의 통일 추진 기획 속에서 탄력을 받았고, 통일독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통합유럽과 유로화의 동력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발전했다는 점에서다.

그 여정의 한복판에 1982∼1998년 총리로서 콜이 있었다면, 그가 발탁한 메르켈이 2005년부터 13년째 뒤를 잇고 있다.

구서독 함부르크 태생이지만, 동독에서 성장한 '물리학 박사' 출신 풋내기 정치인 메르켈은 콜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다.

"콜이 내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놨다"라고 한 메르켈의 콜 추모사는 콜이 1990년 통일을 이끌어 자신 같은 동독 출신의 숱한 인생이 전변했다는 것을 주로 염두에 둔 것이지만, 그 자신의 정치이력까지도 포괄했음 직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관련 서적과 미디어들이 전하는 메르켈 연보를 보면, 메르켈은 1989년 11월 9일 친구들과 사우나를 하던 중 당일의 베를린장벽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었고, 이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12월 동독 민주화 추구 정당인 '민주출발'에 들어가 대변인을 맡는다.

당세가 약한 민주출발은 이듬해인 1990년 3월 당시 동독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자유총선을 치를 때 기독민주당, 독일사회연합과 '독일을 위한 동맹'을 형성하여 라이벌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을 압도한다.

서독 기민당의 거두였던 콜은 그해, 공식 통일 선포기념일이 되는 10월 3일을 앞두고 1∼2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동, 서독 기민당 통합전당대회에서 드레스덴 출신 한 중개인을 통해 콜에게 소개됐다는 것이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기자가 쓴 책 '앙겔라 메르켈, 연방총리와 그녀의 세계'의 기록이다.

 1991년 12월 메르켈 & 콜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1991년 12월 메르켈 & 콜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두 사람은 다음 달인 11월 본에서 다시 만났고, 메르켈을 그렇게 눈여겨본 콜은 12월 통독 첫 총선에서 승리하고는 1991년 1월 통독 초대 연합정부 출범 때 정치초년병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장관으로 기용한다.

당시 세속의 눈으로 보면, 동독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메르켈은 비록 라이프치히대학(동독시절 카를마르크스대학) 물리학 박사 출신이기는 하지만 촌스러운 변방의 정치인에 지나지 않았다.

콜은 그런 그녀를 1994년 11월 이른바 콜 5기 내각 때 환경부 장관으로 다시 밀어 올린다.

메르켈은 콜의 후견 아래서 풍부한 연정 행정 경험을 쌓고는, 기민당이 야당이 된 1998년 이래 2005년 총리가 되기까지 사무총장, 당수, 원내대표를 차례로 지내면서 구서독 가톨릭 주류가 지배한 당의 권력중심을 파고든다.

메르켈은 특히, 2000년 4월 당시 콜의 황태자라고도 불린 볼프강 쇼이블레 당수가 당이 정치비자금 추문으로 위기에 몰려 콜과 함께 퇴장하자, 내처 당수에 오르고서는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르켈이 그에 앞서 1999년 12월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기고문에서 '당은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 콜에게 결정타를 날렸고, 이후 콜이 명예당수직을 내놓고 정계은퇴까지 하게 된 일은 많이 알려진 사건이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콜의 부고 기사로 주요 면을 장식한 17∼18일 주말판에서 "소녀와 노인(또는 연장자) - 그렇다. 이건 하나의 소설을 위한 소재로 충분하다"라며 '콜의 소녀'라는 별명을 가졌던 메르켈과 그녀의 초고속 정치계 입문 및 성장을 도운 노쇠한 콜의 애증 섞인 관계를 빗댔다.

신문은 그러고는, 콜과 메르켈의 관계를 사제지간으로도 비유하며 "메르켈은 콜의 가장 훌륭한 제자"라고 평했다. 적당한 때를 감지하고 극적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다수를 형성시키는 본능을 그녀만큼 누구도 키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관망하는 자세?', '침묵하기?', '시기가 무르익었다 싶었을 때 상황을 장악하는 능력?'이라고 적고는 메르켈은 그런 것을 할 수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들 속성은 메르켈 정치의 특징으로 종종 거론되는 것들이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콜은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또는 힘의 우위 정책, 그리고 뒤이은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빌리 브란트 집권 시기 냉전완화와 동·서독 평화공존을 도모한 동방정책을 모두 계승하면서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등 전승 4개국을 설득하여 통일을 일궜다.

그 근저에는 분단되어 힘이 분산된 동, 서독이 하나 된 독일로 부상하면 다시 한 번 유럽의 세력균형이 깨지고 평화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려는 '평화 독일', '모범국 독일'의 이미지 전파가 자리했다. 콜은 견원지간이던 프랑스와의 화해를 바탕으로 통합유럽의 틀 속에 독일을 위치 지워 '통독 공룡'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청사진을 내밀어 전세계에 그 이미지를 실체로 보여주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진화한 유럽의 원심력이 커지는 근래 들어 콜의 제자에서 유럽의 최강 리더십으로 진보한 메르켈에게는 다시금 유럽의 통합 심화와, 강력하되 주변국에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독일 거듭나기라는 난제가 버티고 있다.

콜은 작년 4월 자신의 신간 '유럽을 우려하며' 서문에서 "일방적 국가행위는 낡은 것"이라며 주변국들과 '함께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두고 언론에선 메르켈의 난민개방정책, 그중에서도 2015년 9월 헝가리로 몰린 난민에 대해 독일이 일방적으로 문호를 열어젖힌 사건을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메르켈은 오는 9월 총선에서 총리직 4연임 도전에 성공하고 임기 4년을 채우면 콜과 16년 집권 기록을 나란히 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가서도 25년 기민당 당수 재임이라는 기록은 일단 콜의 단독 기록으로 유지된다. 콜은 1973∼1998년 당수를 지냈고, 메르켈은 2000년부터 18년째 당수로 있다.

un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18 23: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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