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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해외서 찾는다] 코이카 ODA 현장 - ④ 르완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전문가 꿈꾸는 당찬 여성 3인의 '열정과 도전'
KOICA 윤이나·UNDP 조선·WFP 박수진 씨 "지금 한국서 뛰쳐나와라"

(키갈리<르완다>=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동아프리카 내륙국으로 '천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 르원다에는 아프리카 지역, 기후변화환경, 모니터링·평가(M&E) 등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꿈꾸는 30대의 한국 여성들이 있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르완다 사무소에서 농촌공동체지원사업(RCSP) 프로젝트 실무전문가(PAO)로 일하는 윤이나(34) 씨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기후변화 녹색성장 관련 일을 하는 조선(33) 다자협력전문가(KMCO), 그리고 세계식량계획(WFP)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박수진(34) 모니터링·평가(M&E) 전문가.

이들은 KOICA와 여러 시민단체(NGO)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국제개발협력 경험도 두루 쌓으면서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다.

르완다 정부와 국민에게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이들 3명의 여성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국내 청년들에게 한목소리로 "할 일이 많은 아프리카로 뛰쳐나와라"고 주문했다. 이들에게서 지금 아프리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국제개발협력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윤이나 KOICA 프로젝트 실무전문가
윤이나 KOICA 프로젝트 실무전문가

◇ "개발협력 분야엔 일자리 아주 많아요"

KOICA는 르완다에 총 1천100만 달러를 투입해 농촌공동체지원사업(RCSP)을 추진한다. 지원금 가운데 800만 달러는 농업부가 사업을 실행하고, 나머지 300만 달러는 KOICA가 직접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윤 PAO는 지난 2월부터 농업부에 들어가 KOICA의 사업을 실무적으로 맡아 참여하고 있다.

그는 농업부가 기금을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실무를 지도한다. 농업부에는 윤 씨 외에도 한국인 홍범희(71), 송태관(63) 씨가 근무하고 있다.

"두 분은 기술 자문을, 저는 현장 실무를 지도하고 있어요, 르완다 전역 6곳을 다녀야 하기에 주 3회는 현장을 나갑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합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 밤늦게 오거나 게릴라성 호우로 길이 끊기거나 나무가 쓰러져 그걸 톱으로 자르고 통과하기도 하죠. 하지만 남들에 비하면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 일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지역전문가가 되기 위해 경력 관리를 착실히 하고 있다. 2010년 한국국제봉사기구(KVO) 파견으로 케냐에 가서 1년간 '농촌 지역 여성 역량강화 사업'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2012∼2014년 우간다, 2015∼2016년 모잠비크를 거쳐 르완다에 왔다.

우간다에서는 국제 NGO인 엔젤스헤이븐에서 '여성 아동 교육과 역량강화 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PM)로 활동했다. 당시 에볼라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을 때 혼자 잠자다 화재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정전으로 가스에 질식해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모잠비크에서는 KOICA 민관협력사업 ODA 전문가로 일했다. NGO들 사업장마다 다니며 사업을 모니터링 하고 관리·평가했다. 그때 개발협력 현장에서 뛰는 많은 한국 청년을 만났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윤 씨는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때 필리핀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진로를 잡았다. 당시 놀러 가는 마음으로 갔는데 홍수로 돼지가 떠다니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졸업 후 취직이라는 강박관념에 잠시 대학이 운영하는 사회복지관에서 일하긴 했지만 얼마 못 가서 그만뒀다.

그에게 아프리카는 어떤 의미일까. "착한 사람들 많은, 발전 가능성 있는 대륙입니다. 제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느 나라, 어떤 대륙이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살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KOICA나 NGO 등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죠.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뛰쳐나와 한번 경험해 보길 권합니다."

윤 씨는 또래나 후배들이 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살려는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을 돌려 개도국 현장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980년대 한국에서 히트했던 아이템을 개도국에 적용하면 그 즉시 블루오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공적 무상원조(ODA)나 개발협력 쪽에는 인력이 없어요. 일자리가 아주 많은 데 지원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죠. 외국어도 잘하고 능력 있는 친구들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도전하세요."

조선 UNDP 내 KOICA 다자협력전문가
조선 UNDP 내 KOICA 다자협력전문가

◇ "국제기구 취업,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야"

"사람들은 기후변화나 환경을 이야기하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뭔 한가한 이야기냐고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죠. 기후변화는 개도국 빈곤퇴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조 씨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1월부터 르완다에 와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에 따르면 이 나라는 '천개의 언덕'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언덕도, 경사도 많은데 최근 게릴라성 호우가 잦아져 타격을 주고 있으며, 60년 만에 가뭄도 찾아와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가난한 농민들은 이런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결코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선진국 후진국이 따로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UNDP 르완다 사무소에서 '녹색성장 기후적응전략'의 실천 활동을 지원한다. 천연자원부(한국의 환경부) 공무원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의 이행을 돕고 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물학부를 졸업한 그는 외교부에서 6개월 정도 기후변화환경 태스크포스(TF)로 인턴을 거쳤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대학원생 글로벌 인터십 제도를 통해 유네스코 인도네시아 사무소에서 5개월 정도 인턴을 했고, 2년 7개월 동안 케냐 나이로비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근무했다. 그런 경험을 두루 인정받아 KOICA KMCO로 르완다에 발을 딛게 됐다.

"이 길을 가는 것에 후회한 적은 없어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가령, '아동보호'라는 분야를 말한다고 한다면 누구나 한마디씩은 할 겁니다. 그러나 기후변화환경은 장기적이고, 범지구적인 분야죠. 모두가 발 벗고 나서 협동해야 이뤄진다는 목표가 있어요. 저는 그런 가치관을 갖고 원하는 것을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만족하죠."

그는 기후변화나 환경문제는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공부할 때는 커리큘럼도 부족하고 정보도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많은 자료를 공유할 수 있어서 누구나 뛰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매년 바뀌는 부분도 있어 꾸준한 관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도국에서 기후변화환경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 지금 현장으로 나와 한번 체험해 보기를 권합니다. 이 분야는 맞닥뜨리는 현실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기준 등은 빗나갈 때가 있기에 현장 경험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는 후배들이 국제기구 취업 비결을 물을 때마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라"고 충고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진 세계식량계획 컨설턴트
박수진 세계식량계획 컨설턴트

◇ "전문가 되기 위해 더 열악한 곳으로 갈 것"

KOICA는 2011년부터 르완다에서 1천200만 달러를 들여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식량 지원과 자립을 위한 공동다자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5년 1차 사업이 끝났고 지금은 2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KOICA는 다시 사업을 전개하면서 WFP에 한국인 직원을 채용하도록 요청했고 박 씨가 선발됐다.

이 프로젝트는 KOICA가 원조하고, WFP가 사업관리를 하며 실질적인 사업 실행은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르완다 NGO인 아드라(ADRA) 등이 담당한다. 박 컨설턴트는 지난달 르완다로 건너와서 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소통하면서 코디네이팅과 모니터링 및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이나 지방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농민들도 접촉합니다. 사람과 사업, 두 가지의 실무를 조정하죠. 월별, 분기별, 정기적인 미팅을 하면서 사업이 잘되도록 컨설팅합니다. 아직 한 달밖에 안돼 의욕만 앞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는 2009년부터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해왔다. 세네갈 교육부 유아 교육국에서 교사 연수를 2년간 했고, 2012∼2013년 영국 런던에서 개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4∼2015년 1년 반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LG가 펀딩한 농촌개발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PM)로, 2015년 9월부터 1년간 KOICA 베트남 사무소 ODA 전문가로 각각 경험을 쌓았다.

개인적으로 그는 교육을 통해 개인을 변화시키는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싶어한다. 농촌개발, 교육, 여성 분야를 체험하면서 그가 세운 하나의 목표인 것이다.

개발협력에 뛰어들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어릴 때 그저 막연히 외국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많았다. 대학 재학 중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월드뱅크,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방문하는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때 한 강의를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이 교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와 상의없이 몰래 KOICA에 지원서를 냈다. 합격한 뒤 세네갈에 가기 전에는 부모에게 말해 허락을 얻어냈다. 영국 유학 후에도 부모는 한국에 정착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에 개발협력이 꽂혀 있었기에 "너 미쳤구나"라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박씨의 열정과 노력에 이제 부모는 든든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오는 2018년 르완다 사업이 끝나면 또 짐을 싸서 다른 나라에 가야겠죠. 기왕이면 여기보다 더 열악한 나라로 가는 것이 목표예요. 지금까지는 그나마 잘사는 나라에 있었어요. 남수단이나 소말리아 현장을 가보고 싶어요. 나중에 전문가가 되어 정책 자문이나 제언 등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젊었을 때 가능한 한 많은 현장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고 싶어요."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16 09:5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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