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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가르칠 때 행복"…엄 넬리 러시아 한민족학교장 특강(종합)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한국말 배우지 못했어요."

엄 넬리(77·여) 러시아 한민족학교장은 15일 오후 전북 전주 근영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30여 명의 학생 앞에 섰다.

엄 넬리 교장(가운데)의 수업 모습.
엄 넬리 교장(가운데)의 수업 모습.

이번 수업은 엄 넬리 교장의 한국 방문 소식을 접한 조은경 근영중 교사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얼굴에 세월이 흔적이 가득한 엄 넬리 교장은 약간은 어눌한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고려인의 서글픈 강제이주 역사를 설명했다.

올해는 고려인이 강제로 이주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고려인(까레이스키)은 일본 강점기에 소련으로 이주해 현재 러시아 등 옛 소련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 동포를 뜻한다.

이들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일대로 흩어졌다.

엄 넬리 교장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가족과 연해주로 피난했고, 그의 언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추위를 견디다 못해 동사했다.

소수 민족에 대한 핍박 속에 엄 넬리 교장은 한국어를 하지 못했고 낯선 땅에서 오로지 러시아어만 썼다.

한국어를 쓰기만 해도 경찰에 붙들리는 세월이 하 수상했던 스탈린 독재 시절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당시 스탈린 독재하에서 한국말을 하지도 배우지도 못했다"며 "가족이 거리에서 한국말을 하다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고 설움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엄 넬리 교장은 1991년 그의 나이 51세 때 처음으로 모국 땅을 밟았다가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면서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말 모릅니다" 세 마디 밖에 못했기 때문이다.

동행한 러시아인과는 유창하게 대화했지만 정작 동포들과 말 한마디 섞지 못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모스크바로 돌아와 초등학교 1학년 한국어 교재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어 단어가 적힌 메모지를 부엌, 화장실, 방 등 집 안 곳곳에 붙여 놓고 달달 외웠다.

하루에 단어 20개를 외우지 못하면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고선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동포가 없도록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고려인의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1992년 러시아 유일의 한민족학교를 설립했다"며 "현재 53개 소수 민족의 700여 명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이중 60% 이상이 고려인이다"고 말했다.

엄 넬리 교장은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한국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학생들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엄 넬리 교장의 생애에 궁금증을 던졌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며 "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한민족은 우수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친 것은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같다"며 "한국인들이 자신의 국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라를 위해 봉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은경 교사는 "러시아에 묻어있는 많은 한국의 흔적을 연구해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했다"며 "이번 기회로 학생들이 아픈 고려인의 역사를 충분히 배웠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do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15 18:0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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