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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 ⑨ 운명처럼 받아든 사법시험 합격통지서

사시 최고령 합격자 박연재씨…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각별한 관심
"직업을 가질 것, 맨몸으로 출발한다는 각오로 제2의 인생 살아야"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광주 법조인의 메카인 지산동 한편에 마련된 박연재(65) 법률사무소.

사무장도 없는 단출한 사무실에서 환갑이 넘은 박 변호사가 서류 더미에 쌓여 여느 변호사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박연재 변호사
박연재 변호사

박 변호사의 경력은 불과 5년이다. 그는 사법시험 사상 최고령 합격자이자 사법연수원 최고령 수료자다.

30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2010년 58세의 나이로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그는 2년간 연수를 마치고 환갑의 나이에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나이에 초짜 변호사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자식뻘인 법조인들과의 경쟁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는 "법정에 설 경우 혹시라도 젊은 법조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30년 기자 근성이 남아서인지 상대방의 주장이나 증언에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면서 "법정에서 학교 후배인 판사나 검사, 연수원 동기들을 마주하는 게 부담스럽고 상대방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인생 경험에서 얻은 관록과 여유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며 늘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그는 "의사는 연륜이 쌓일수록 좋고 변호사는 젊을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만 투철한 사명의식과 열정이 젊은 시절에 비해 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나이가 들면 경험을 내세워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혹시라도 잔소리만 많이 하는 게 아닌지 자주 되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30여 년 만에 명예회복
30여 년 만에 명예회복(과천=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시위 전력으로 사법시험에서 불합격 처분된 6명에게 49회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수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황인구 SK가스 자원개발본부장,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 박연재 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실 국장, 정성진 장관, 신상한 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 조일래 한국은행 법규실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2008.1.21

환갑의 나이에 변호사가 된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박 변호사는 1981년 23회 사법시험 3차 면접까지 갔다. 하지만 전남대 재학시절시위에 가담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전력 때문에 탈락했다.

이듬해 1차, 2차 필기시험을 면제받고 주어진 면접 기회에서도 낙방했다.

그는 법조인의 꿈을 뒤로하고 1981년 KBS에 입사, 언론인으로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뒤늦게 젊은 시절의 꿈을 펼칠 기회가 운명처럼 다시 찾아왔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그와 유사한 이유로 법조계 입문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연수원 입소를 권고했다. 이듬해 과거사 정리위원회 권고를 법무부가 받아들였다.

젊은 날 두 차례에 걸쳐 시련을 안겼던 3차 면접 자리에 다시 한 번 앉았던 그는 30여 년 만에 비로소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2010년 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위원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과 격려 속에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환갑의 나이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된 수업, 시험, 세미나 등의 일정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들뻘인 연수생들과의 경쟁도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연수원과 연수생들의 배려, 각고의 노력 끝에 무사히 연수원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30여 년 만에 사시합격 명예회복(과천=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시국 관련 시위 전력으로 사법시험에서 불합격 처분됐던 6명이 정부 과천청사에서 49회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받고 정성진 당시 법무장관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황인구 당시 SK가스 자원개발본부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조일래 한국은행 법규실장,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 신상한 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 박연재 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실 국장. 2008.1.21
30여 년 만에 사시합격 명예회복(과천=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시국 관련 시위 전력으로 사법시험에서 불합격 처분됐던 6명이 정부 과천청사에서 49회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받고 정성진 당시 법무장관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황인구 당시 SK가스 자원개발본부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조일래 한국은행 법규실장,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 신상한 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 박연재 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실 국장. 2008.1.21

언론인으로서 30년 가까운 삶을 살았고, 뒤늦게 젊은 날의 꿈까지 이룬 박 변호사는 이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웃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한다.

특히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은 변호사로서 삶의 원천이자 꼭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이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그는 2012년 고향 사람들을 통해 고향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 사건을 접했다.

그는 영암 민간인 희생 사건의 피해자 유족 3명과 2012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유족 진술 등을 근거로 2014년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전남 화순, 나주 등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 사건 의뢰가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화순·나주 민간인 희생 사건'의 피해자 유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또다시 승소했다.

과거사 사건의 유명인이 된 그는 현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 관련 10여 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개정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을 다시 재조사한다면 조사위원으로 참여해 진상 규명과 배상에 힘을 보태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6·25 무렵 태생으로 전쟁의 참화를 잘 알고 있고 주위에도 피해자가 많기 때문에 과거사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과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을 승소로 이끌면서 고인과 유족에게 다소의 위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인격과 자존감을 포기하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현직에 있을 때 우선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맨몸으로 출발한다는 각오로 새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bebop@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7/15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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