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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이준익 "일제강점기에 대한 관점의 지평 넓히고 싶었다"

유쾌한 이준익 감독
유쾌한 이준익 감독(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개봉을 앞둔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6.14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이준익(58) 감독이 독립투사 박열(1902∼1974)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영화 '아나키스트'를 제작 중이던 1995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에 관한 수많은 책을 보다가 박열을 알게 됐다고 한다.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잘 몰랐던 항일 투사들을 많이 알게 됐는데, 그중에서 박열이 가장 차별화됐고 놀라웠다"고 떠올렸다.

박열은 간토(관동) 대학살이 벌어진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일부러 일본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도록 목숨을 건 법정 투쟁을 벌였던 조선의 아나키스트다.

이 감독은 이런 숨은 역사 속 박열을 가슴 속에 담아두다가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부족한 실력으로 어설프게 만들거면 안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아는 인물인 '동주'를 먼저 영화로 만들었죠. '동주'가 어느 정도 대중의 호감을 얻은 것 같아 용기를 냈습니다."

'왕의 남자'(2005), '사도'(2013), '동주'(2016) 등 그동안 사극에서 강점을 보여온 이 감독은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박열'에서 박열(이제훈 분)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기존 일제강점기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밝은 톤으로 그려냈다.

다음은 이 감독과 일문일답.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개봉을 앞둔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6.14
ryousanta@yna.co.kr

-박열의 어떤 점이 특별했나.

▲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한반도에 국한된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동북아로 넓혀서 봐야 한다. 박열은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대법원까지 주도적으로 재판을 끌고 가 조선 민족 대표로서 선언문을 낭독한 인물이다. 그런 존재는 박열이 유일하다.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위안부 문제가 이슈였던 반면, 간토(관동)대학살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1923년 9월 발생한 간토대지진으로 약 1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그에 앞서 1918년에는 일본의 쌀 폭동이 일었고, 1919년에는 3·1 운동이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일본 전체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내각은 국면 전환을 위해 간토대지진 이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고, 당시 조선인 6천명이 학살당한다. 박열은 이런 간토대학살 사건을 은폐하려는 일본 내각의 마녀사냥에 걸려든 것이다. 박열은 이 사실을 알고 일본 대법원까지 가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 알리겠다고 결심하고, 주도적으로 사형을 '획득'한 것이다.

- 기존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들은 대부분 무겁고, 진중한 편인데, '박열'은 좀 다르다.

▲ 일부러 밝은 톤으로 그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해학과 익살이 넘친다. 또 아무리 참혹한 현장에서도 웃음은 나올 수 있다.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한평생 심각하게만 살았겠나. 그동안은 식민지 시대를 너무 근엄하게 그리는 것이 관성이었다. 억울함에 대한 하소연, 분노에 대한 감정 표현 방법이었다.

'박열'은 이성과 논리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오히려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동안 식민지 시대를 틀에 박힌 프레임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식민지 시대를 보는 지평을 넓히고 싶었다.

--그런 방법이 주효했다고 보나.

▲ 그렇다. 전날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는 웃음이 '팡팡' 터졌다. 관객들이 웃었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에 몰입했다는 것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과 논리로 접근했다는 의미다. 사고가 자유로운 젊은 세대들이 영화에 더 많이 공감하는 것 같더라.

포즈 취하는 이준익 감독
포즈 취하는 이준익 감독(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개봉을 앞둔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6.14
ryousanta@yna.co.kr

-- '박열'역을 맡은 이제훈의 연기에는 만족하나.

▲ 굉장히 잘했다. 특히 리액션이 뛰어났다. 영화 속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대사를 할 때 이를 정확하게 듣고 반응했다. 법정에서 자기주장을 펼 때의 신중함과 진중함,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기 위해 주도적으로 판사에게 허허실실 대하고, 일본 내각을 자극하는 모습 등이 훌륭했다.

--일본인들도 '악인'으로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 반일영화가 아니다. 일본에 대한 관습적인 배타적 감정을 갖고 찍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 박열도 "일본 권력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지만, 일본 민중에게는 친근감이 들지"라고 말한다. 박열은 실제로 일본 노동자 투쟁에 합류해 노동자 투쟁을 하기도 했다.

-- 박열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과 이 인물을 연기한 최희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 가네코 후미코는 엄청난 페미니스트다. 흔히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버지니아 울프, 펄벅 등을 떠올리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아시아의 주도적인 페미니스트였다. 일본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배우 최희서는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연기도 되기 때문에, 최희서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대부분이 일본어 대사다.

▲ 재일동포 3세 연출가인 김수진이 이끄는 극단 '신주쿠양산박' 소속 배우들이 외무대신, 내무대신, 총리 등의 역할을 직접 연기했다. 한국어로 시나리오를 쓰면 이들이 직접 일본어로 고쳤다.

fusionj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14 16:4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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