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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먹이 제공 논란 "피해 예방"vs"되레 화 키울수도"

송고시간2017-06-13 08:30

옥천군 "배부르면 산에서 안 내려와"…출몰지에 먹이 주기 실험

전문가 "번식 환경 좋아지는 악순환 조성 가능성" 신중론 제기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이 최근 농작물에 큰 해를 입히는 멧돼지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역발상 행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굶주린 멧돼지를 배불리 먹여 농경지 근처에 내려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색처방이다.

멧돼지 유인할 고구마와 당근 [연합뉴스 자료 사진]
멧돼지 유인할 고구마와 당근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 지역에는 올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 신고가 101건 접수됐다. 대부분 멧돼지나 고라니로 인한 피해다.

신고가 들어오면 베테랑 엽사로 구성된 유해 야생동물 자율구제단이 출동, 야생동물을 포획한다.

작년 멧돼지 275마리와 고라니 1천875마리가 자율구제단에 붙잡혔고, 올해도 104마리와 856마리가 포획됐다.

그러나 이 같은 구제활동에도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옥천군의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은 2014년 40건(4만2천575㎡), 2015년 37건(5만3천129㎡, 지난해 104건(9만4천974㎡)으로 느는 추세다.

그 중에도 생태계 최상위에 올라 있는 멧돼지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는 농경지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한 주에 3∼4건의 농작물 피해신고가 접수된다. 대부분이 멧돼지를 포획해 달라는 요청이다.

작년 1월에는 옥천읍 서정리에서 20대 여성이 갑자기 주택가 골목에 나타난 멧돼지 떼를 피하다가 넘어져 다친 일도 있다.

◇ "먹이 줘 하산 막자"…옥천군 역발상 행정

고민하던 옥천군은 멧돼지가 주택가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먹이를 이용해 산속으로 유인하기로 했다. 수렵만으로는 멧돼지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선택한 방법이다.

농촌 마을에 나타난 멧돼지 떼 [연합뉴스 자료 사진]
농촌 마을에 나타난 멧돼지 떼 [연합뉴스 자료 사진]

번식기를 맞은 멧돼지가 영양이 듬뿍 담긴 먹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군은 멧돼지 출몰이 잦은 야산 중턱 2곳에 고구마·당근 200㎏씩을 뿌려 놨더니 멧돼지 하산을 막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먹이를 먹고 난 뒤 산속으로 되돌아간 멧돼지의 발자국을 다수 확인했고, 인접한 복숭아과수원이나 고구마밭의 멧돼지 출몰 빈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군은 실험단계지만, 이 방법을 통해 멧돼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단 3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상태인데, 성과를 봐가면서 추가로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산속에 먹잇감이 충분하다면 굳이 멧돼지가 인간과 충돌할 이유가 없다"며 "먹이값도 수렵에 들어가는 예산과 비교하면 그리 큰돈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멧돼지에게 먹이에 대한 학습효과를 심어줘 장기적으로 농작물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사살된 멧돼지 무리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살된 멧돼지 무리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오히려 농작물 피해 키울 수도"…신중한 접근 필요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멧돼지는 맛 좋은 먹이가 있는 위치 등을 잘 기억하는데, 고구마나 당근 맛을 보게 되면 주변의 고구마나 당근밭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주변의 농사 환경이나 수확 시기 등을 잘 따져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번에 체중의 20∼30%까지 먹어치우는 멧돼지한테 먹잇감을 대주기가 쉽지 않은 데다, 먹이가 풍부해지면 번식환경이 좋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멧돼지는 초산이나 영양이 부족할 경우 한 번에 4∼5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영양 상태가 좋으면 10마리 이상을 낳기도 한다.

나기정 충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도 "야생 멧돼지가 위험을 무릅쓰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이유가 먹이 때문인 점을 고려할 때 단기처방으로는 괜찮을 수 있다"면서도 "농경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를 택하고, 포획을 통한 개체 수 조절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신중론을 제기했다.

환경부는 작년부터 북한산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멧돼지의 주택가 출몰을 막기 위한 '멧돼지는 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택가로 이어지는 이동통로에 차단시설(4.2㎞)을 설치하고, 포획틀(18곳)과 포획장(5개)을 설치해 개체 수를 줄여가는 사업이다.

새끼 데리고 이동하는 멧돼지 [연합뉴스 자료 사진]
새끼 데리고 이동하는 멧돼지 [연합뉴스 자료 사진]

멧돼지 출몰로 인한 안전사고 등을 예방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멧돼지와 공존한다는 차원에서 옥천군의 시도 역시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야생동물 생태에 간섭하는 문제는 전문적인 연구와 판단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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